타산지석
타산지석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7.2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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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딸 가진 어머니가 속 썩이는 딸에게 그런다지요? "이것아, 너도 너 똑같이 닮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 그러면 그때 이 어미 마음 알 것이다!"

요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딸의 심경이 어떨지를 알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저는 어떻게 하면 성당 여름행사에 빠질까를 궁리하는 학생이었고, 그래서 주일학교 선생님이나 수녀님의 애를 참 많이 먹였습니다. 이제는 정반대 입장에서 옛날 제가 했던 것과 똑같은 말과 행동으로 애를 먹이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에게 참 도움이 되는 좋은 것들이었는데 왜 그렇게 뺀질거리고 도망을 쳐서 그분들의 애간장을 끓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됐고, 각 성당들은 여름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 청주 교구에서는 도보성지 순례라는 내용으로 청소년 대회를 개최하는데 많은 성당의 학생들이 여기에 참가합니다. 참가자들은 배티에서 연풍까지 91km에 이르는 거리를 3박4일 동안 걷게 될 것이고, 그 여정 속에서 현재 시복시성 운동이 한창인 한국의 두 번째 신부 최양업 토마스의 삶을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종일 침묵하며 앞 사람 발뒤꿈치만을 쳐다보며 걸어야 할 것인데, 잠시도 고요함 속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현대 사회를 사는 학생들이기에 이 부분은 부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완주하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이나 고생하며 형성된 끈끈한 동료애를 통해 얻는 것이 더 크고 풍요롭기에 많은 저희는 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기를 바라며 설득하는 것입니다.

"○○야, 넌 신부님 나이만큼 살아보지 못했잖아? 그러나 신부님은 네가 살아 보지 못한 시간을 살아 보았고, 그래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너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 그 좋은 것을 놓치지 말라고 너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신부님이 설마 나쁜 것을 너에게 선택하라 알려 주겠니? 너의 청소년 시절은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야. 그 시절을 보다 더 많은 경험과 보다 더 좋은 추억으로 채워야 인생이 더 행복하지 않겠니? 집에서 TV나 보고 문제나 풀며 보낸 7월의 어느 날은 나중에 기억조차 나지 않을지 몰라. 그러나 땀 흘리며 고생한 추억은 네 인생의 노트에 인상적인 한 페이지로 쓰일 거야. 신부님도 중학생 때 딱 한 번 참가해 보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 되었는지 몰라. 그러면서 청소년기에 더 많은 체험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돼. 너는 신부님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길 바라. 자,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이렇게 제가 살아온 역사를 들려 주며, 저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 자신에게 좋을 것인지를 저울질 하다가 제가 바라는 선택을 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야기해 주는 신부님 삶의 역사를 타산지석 삼아,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현명한 선택을 한 감곡의 30여명의 학생들은 배티에서 연풍까지 다른 성당의 600명이 넘는 학생들과 충북 지방의 산과 강가와 도로변을 걷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구르는 수레바퀴와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역사를 잘 탐구함으로써 시간과 재물의 낭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역사를 잘 알 만한 사람들이 역사의 교훈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코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현명함을 잃고 있는 처사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그 이기적인 삽질로 파괴된 산과 강을 걸으며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타산지석을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그것을 살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순에 혼란스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또 한편으로 그런 바람도 갖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이 이기적인 삽질이 미래 주인공인 우리 학생들에게 있어 타산지석의 표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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