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날씨-17회
신화속의 날씨-17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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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차라리 꽃이나 되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면.”베리디스의 혼잣말이 봄의 산들바람에 실려 숲 속으로 퍼져 나간다.

그녀는 맑고 건조한 날씨를 사랑하는 숲의 님프이다.

베리디스의 고통을 지켜보는 숲 속의 나무와 새, 꽃의 요정들은 그녀를 도울 수 없어 마음 아프기 만하다.

사건의 시작은 숲의 축제가 열렸을 때였다.

축제에는 예쁘게 단장한 나무와 꽃, 물의 님프들이 모두 참석했다.

드디어 님프들이 기다리던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숲의 님프 베리디스는 님프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그녀가 춤을 추면 온 숲 속에 정결하면서도 달콤한 허브향이 퍼져 나갔다.

숲의 요정과 님프들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풍요로움과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단연 숲 축제의 여왕이었다.

과수원의 신 베르탈나스가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베리디스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빠져들더니 나중에는 영혼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매일 아침 그녀가 호숫가에서 얼굴을 씻고 있으면 영락없이 나타나서 날이 저물때까지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베르탈나스는 감히 사랑을 고백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녀의 사랑을 사고 싶다’고 신에게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

베르탈나스의 순수한 사랑을 알게 된 베리디스는 고민에 빠졌다.

간절히 사랑을 갈구하는 맑고 아름다운 청년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사랑을 준 연인을 배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밝고 아름다웠던 웃음 대신 한숨과 그늘이 그녀를 덮었다.

그녀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신은 차라리 꽃이 되고 싶다고 하는 베리디스의 기도를 들어주기로 했다.

결국 화려하게 빛나는 꽃이 아닌 겸손하고 천진난만한 아름다움을 가진 데이지꽃으로 모습을 바꿔주었다.

여느 때처럼 베리디스의 모습을 보기 위해 호숫가로 향하던 베르탈나스의 눈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들어왔다.

데이지 꽃이었다.

날씨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나 몸 상태가 달라진다는 것은 최근에 알려진 사실이다.

맑은 날씨를 가진 고기압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기분이 명랑해지고 어려운 일도 쉽게 해결된다.

기압이 높아져 공기가 서늘해지고 맑아지면 사람들의 기분도 가벼워지고 창조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기압이 접근해 올 때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기압이 서서히 하강하면서 온도와 습도가 상승하고 구름이 많아지면 우울증이 심해지거나 간질성 발작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장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이 많이 나타난다.

데이지의 꽃말은 천진난만한 아름다움과 겸손함이다.

숲의 요정 베리디스의 성품이 그대로 꽃말이 되었다.

그녀는 맑고 깨끗한 공기의 날씨일 때 숲이 가장 활기에 넘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기압의 날씨에서는 더 없이 천진하고 밝은 기분으로 온 숲을 춤추며 돌아다녔지만, 어둡고 습하며 왠지 모르게 꽉 조여 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저기압이 접근해 오면 숲의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데이지는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5월에서 6월에 개화를 하는 데이지의 속명은 라틴어로 bellus(아름다움)이지만, 영어로는 day’s eye(태양의 눈)로 불린다.

꽃의 가운데가 태양의 눈처럼 생겨서인지 데이지는 햇빛을 무척 좋아하지만 대기 중의 습도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날씨가 흐려지면서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면 꽃받침의 조직이 변하면서 꽃잎을 오므려 눈을 닫아버린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데이지가 눈을 닫으면 비’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맑고 건조한 날에는 활짝 꽃을 피우지만, 날씨가 흐리고 습도가 높아지면 꽃을 닫아버리는 데이지는 숲의 님프였던 베리디스의 속성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유럽의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데이지 꽃은 유럽에서는 길가의 잡초처럼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화단용이나 관상용으로 개량되어 한층 귀한 대접을 받는다.

원종(原種)의 직경은 1㎝ 정도로 작지만 품종 개량에 의해 직경 8㎝ 크기까지도 꽃을 피운다.

팬지와 함께 대중적인 봄꽃으로 개화기가 길다는 점에서 ‘장수국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원산지 유럽의 여름이 시원한 곳에서는 숙근초가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1년초 취급을 한다.

잘 가꾸어진 봄 화단에 단정히 피어있는 데이지 꽃을 보면 그 아름다움에 모두 발길을 멈출 것이다.

단번에 눈길을 끌 정도로 매혹적이지는 않지만 데이지만의 은근한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숲의 님프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베리디스가 데이지 꽃으로 변신했다는 데도 실제의 데이지 꽃은 화려하지 않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밈없는 순수함과 천진한 아름다움 때문인지 의외로 남자들이 좋아한다.

세상에는 장미꽃의 화려함에 빠지는 남자들도 많지만 데이지 꽃처럼 소박한 아름다움에 눈길을 주는 순박한 남자들도 많다.

은근한 아름다움을 알아달라는 뜻인지 카레도니아 몰벤에서는 소녀들이 데이지꽃을 남자 어린이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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