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여성문인협회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충북여성문인협회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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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화인으로 존재하는 나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했어도 그는 오롯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처절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혼의 흐느낌이 들리는 듯했다.

그건 아마도 잿빛하늘 아래서만 가능했으리라. 인간으로 태어나 맑은 날, 그를 어찌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으랴. 정녕코 부끄러워 아니될 일만 같다.

정녕 누가 누구를 박해하고 단죄를 물을 것인가. 그의 눈을 더럽히고도 모자라 생채기를 수없이 입혔다.

구천에 떠도는 영혼에게 어찌 용서를 구할 것이며, 구구한 변명을 어떻게 늘어놓는단 말인가.서산 해미읍성 성내엔 봄이 한창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꽃을 피우고 옷을 입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성내 광장에 그는 혼자 알몸이었다.

속명은 회화나무, 별칭은 호야나무(호롱불의 충청도 사투리). 그냥 보기엔 정녕 볼품없는 나무였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이 역사의 산실이며, 산증인과 같다하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날의 처참한 사건과 지울 수 없는 낙인까지 찍혀 있으니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나는 과연 누군가를 위해 나의 전부를 희생할 수 있을까. 아무 의식 없이 봄나들이 간다하여 따라나선 길이었다.

그저 일상을 벗어 난 것에만 기뻐 흥분에 젖어 있었다.

그가 어이없어 하품을 하고도 남을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주위를 환히 밝힌다.

갖은 고초와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수많은 선열들. 심지어 나무에 머리채를 철사 줄로 묶어 매달려 있었다던 흔적과 배고픔에 자신의 살을 뜯어먹었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진저리마저 쳐졌다.

그래, 자신의 안일과 무사를 원했다면 지금의 순례지로, 회화나무란 명성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은 침잠해 있던 우리의 가슴을 읽는가.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작은 것들의 눈부신 마술에 너도나도 환호를 보낸다.

질경이, 푸른 개불알풀꽃, 보랏빛 광대나물, 하얀 별꽃무리. 혹여 그들의 영혼이 아닐까 싶어 작은 들풀까지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잿빛 하늘을 한껏 품고 있는 호야나무를 다시금 올려다본다.

인간사를 원망하기는커녕 그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그에 비하면 내 모습이 그만 부끄러워진다.

그의 말없는 가르침인가. 새롭게 물상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가슴엔 무언의 의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은희(청주여성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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