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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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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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꼭 가고 싶었다.

꿈에도 그리워하던 산이었기에 그곳에 간다는 것은 일생 일대의 사건이다.

중국 동포들이 사는 연변을 통해 백두산을 다녀왔다는 사람들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설레었다.

하지만 나는 평양을 통해서 우리 땅을 밟고 백두산에 간다.

백두산 가는 날 평양의 아침은 맑았다.

비행기를 타고 1진이 출발하고, 우리는 2진으로 평양 비행장에서 기다리하고 있었다.

함께 가는 남쪽의 작가들의 얼굴이 환하고 명랑하다.

드디어 힘차게 고려항공 비행기가 백두산을 향해 날았다.

평양에서 백두산까지 거리는 385Km이다.

제주도를 가기 위해 서울에서 제주까지 비행기로 갈 때 조국의 반쪽 산하를 내려다 본적이 있다.

남쪽의 하늘 밑에는 거미줄 같은 길이 내려다 보였었다.

평양 비행장에서 삼지연 공항까지 가는 동안 아름다운 북녘의 산하를 내려다 보았다.

길은 비포장으로 단조롭게 나 있었고 복잡하지 않았다.

우리네 사는 남쪽과 별다른 것 없이 농사짓고 살고 있는 농가들이 보였고, 옛 고향길 같은 작은 길들이 정답게 느껴졌다.

백두산 가는 길에 ‘조국은 하나다’라는 슬로건이 떠올랐고, 김남주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삼지연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다.

이깔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공항은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모습의 공항이었다.

너무 작은 공항이라서 놀랐고, 숲에는 백두산의 여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김해화 시인은 꽃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함께 온 북쪽 작가들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내 옆에는 늘 북쪽의 안내원이 따랐다.

북측의 리호근 , 오영재 시인은 백두산에 온 소감을 물었다.

나는 아주 간단 명료하게 대답했다.

“기쁩니다.

통일이 다 된 것 같습니다.

” 나는 그들에게 백두산의 즉흥시를 들려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쓴 시였다.

매우 만족해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백두산 밀영에 가서 이 시를 다시 읽어달라고 하여 두 번째 박수를 받았다.

항일유격대의 백두산 밀영 귀틀집의 문 손잡이는 노루발로 되어 있는, 그것은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경계 근무를 서다 돌아오는 대원들의 손을 잠시라도 따뜻하게 녹여주기 위해서 만들었다 한다.

백두 밀영 숲의 박우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른다.

그 우물물을 마시면 10년은 젊어진다고 자랑을 한다.

한여름의 그 우물맛이 그렇게 달 줄이야. 백두산은 항일무장투쟁과 관련된 유서 깊은 곳이 많다.

이 일대는 조국강산에 빛을 환하게 비춰준 보천보 전투와 불멸의 자취를 남긴 청봉, 건창, 베게봉, 삼지연, 갑무경비도로와 두만강가의 무포, 신사동 마을, 대흥단벌 등이 있다.

백두산은 참으로 신비로운 산이었다.

1920년부터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를 시작으로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항일 무장투쟁의 본거지가 되었다.

백두산의 정계비는 일본군이 없애버렸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난 뒤 바로 없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의 땅은 사이섬이라 불리던 간도(間島) 넓은 들 고구려 땅까지가 경계였다.

이런 내용을 없애버린 것이 일본제국주의 군대이다.

북측의 리호근 시인은 말하기를 1937년 보천보 전투는 일본군대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전공을 세웠다고 크게 말한다.

1939년 백두산 일대에서는 일본군과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는데 김일성 항일부대가 대흥단벌 전투, 신개척, 신사동, 하삼수평, 갑무경비도로 전부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랑을 한다.

북한이 백두산을 중국에 내준 것처럼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것은 사실과 다르며, 북한은 1962년 중·조변계조약(中朝邊界條約)을 맺어 국경선을 획정하여 약280Km를 중국 측으로부터 더 얻어냈다.

백두산은 천지를 중심으로 천지 60%를 북한이 40%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백두산 베게봉 호텔에서 벽초 홍명희 손자 홍석중, 황석영 소설가와 백두산의 첫 밤을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백두산 들쭉 술을 마시며 기분 좋게 노래도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열 이레, 달이 휘영청 밝았다.

주먹만한 별빛들이 쏟아져 내렸다.

내일 아침이면 이깔나무 숲을 따라 백두산을 오르게 된다.

북한문학은 바로 백두산으로부터 출발한다.

백두산 일출을 보여주기 위해 새벽 3시에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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