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엿 먹을래?-남성수
너, 엿 먹을래?-남성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1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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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리개 시절 우리 집 농사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참깨, 들깨 농사였다.

멍석 위에 깔린 줄기마다 가지런히 달린 열매들을 도리깨로 내려치면 잘디잔 깨들이 흩어지며 나던 냄새, 어린 시절 그 맑은 가을 하늘에 빙글 빙글 돌던 도리깨와 마당 가득하던 고소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깨를 생각하면 엿장수의 쟁그랑거리는 가위소리도 함께 생각난다.

마루 밑에 뒹굴던 흙먼지 빈 병을 받고 두 가락이나 엿을 주던 고마운 엿장수 아저씨였다.

녹슨 쇠붙이도, 다 떨어진 고무신도 달콤한 엿으로 바꾸어 주는 천사요, 손수레 위 목판 가득 엿을 싣고 다니는 부자였다.

햇살도 배고프던 뜰, 마루 밑에 빈병도 헌 고무신도 없던 어느 날 엿장수 가위질 소리를 구경하던 나는 어떤 아이가 참기름 한 병을 주고서 엿을 한 봉지나 받는 것을 보았다.

옳거니, 참기름, 들기름은 우리 집에도 있다.

나는 그날 뱃속이 달 때가지 엿을 먹고 집에서 쫓겨났다.

세상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작던 크던 같다는 말은 진실인 모양이다.

IMF 이후, 나라를 결딴 낼 지도 모를 FTA로 온나라가 뒤숭숭하다.

우리가 미국과 ‘자유’(F)롭게 ‘무역’(T)을 하겠다고 ‘협정’(A)을 하면 우리는 농사나 보건의료, 교육, 의료, 수도, 전기, 가스,철도 등 공공 서비스 분야를 민영화 또는 매각하게 되고, 대신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선진기술을 배울 기회가 증가하고, 장기적으로는 서비스업도 경쟁력 강화 효과가 생길 것이며, 수출도 GDP도 늘고, 미국과의 경제 동맹은 한국을 동북아의 허브로 성장시킬 것이란다.

이름하여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면, 내게 없는 것을 네가 좀 준다”는 기브앤테이크, 비교우위 경제학, 경쟁의 세계화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우리는 참기름 주고 혹, 먹고자하는 것은 엿이 아닌가.우리 정부는 FTA 체결 4년이면 GDP 최대 2%(일자리 10만개)를 주장하나, 미국제무역위원회는 우리와 같은 분석기법(CGE)으로 예상하여 GDP 0.7%증가로 본다.

그리고 이것도 환율이 100원만 하락해도 상쇄되는 정도라고 한다.

일자리 10만개를 말하지만 농업분야에서 약 8만 5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며, 나머지 1만 5천의 증가는 비정규직의 증가일 뿐이다.

또한 서비스업의 ‘장기적’ 경쟁력이라는 전망은 현재 경쟁력이 없다는 고백이다.

볼리비아는 미국과의 FTA 이후 수도 요금이 서민 월급의 20%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공공기업의 민영화와 매각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고용없는 경제성장의 정착이요, 서민 삶의 재앙이다.

그날, 어머니는 나에게 “너도 어리석지만, 다섯 살짜리 아이를 꼬여 참기름을 가져간 엿장수를 혼내야 한다”고 노하셨다.

나는 그 때 어머니께 “참기름을 가져 간 것은 엿장수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갖다 주었다”고 둘러대었었다.

묘한 심리이다.

온 국민이 한·미 FTA가 가져올 재앙 앞에 떨쳐 일어나고 있는 지금, 3년도 넘게 빈 병이나 들고 양극화화 앞에 쩔쩔매던 노무현 정부는 이제 없는집 참기름 병을 들고서, 1년 안에 협상을 마치겠다며 결코 미국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 요구한 협상이라고 서두르고 있다.

삼척동자도 웃을 일은, 어린애가 어른에게 달리기 경쟁을 하자고 요구하는 법은 없다.

세계 경제력 30%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웃는다.

너, 엿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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