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눈치보는 시어머니처럼은 아니더라도
며느리 눈치보는 시어머니처럼은 아니더라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6.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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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감곡성당 보좌신부>

천주교 신자들은 매 주일 성당에 나와 성체를 모십니다. 예수님이 현존하시는 성체를 모심으로 신자들은 힘을 얻고 한 주일을 열심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세가 높은 어르신이나 환자들은 매 주일 성당에 오실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이분들을 위해 봉성체를 합니다. 신부가 한 달에 한 번씩 성체를 모시고 가서 영해 드리고 옵니다.

지난 주일은 공소 신자인 아녜스 할머니께 봉성체를 해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아녜스 할머니는 홀몸노인입니다. 시골 많은 어른들이 그렇듯 자녀가 있지만 모두 객지에 나아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봉성체 가는 날이면 할머니는 안방에 작은 상을 마련해 흰보를 깔고, 가운데 십자가를 모시고, 양 옆에 촛불을 켜 놓고 계셨습니다. 머리에는 흰 미사포를 쓰고 신랑을 기다리듯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께 성체를 영해 드리고 나면 할머니는 잠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나면 할머니는 영감님에게 하소연 하듯 당신이 겪는 어지럼증이나, 삭신을 아프게 만드는 관절염에 관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을 예상하며 할머니 댁에 찾아 갔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안방에는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할머니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주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챙기고 계셨습니다. 주방으로 건너가 보니 할머니는 이것저것 보따리 보따리를 챙기고 계셨습니다. 늘 아프시다 인상 쓰시던 얼굴이 밝게 웃는 하회탈처럼 싱글벙글이셨습니다.

모처럼 아들 내외가 찾아 와서 봉성체날인 것도 잊고, 며느리에게 싸 보낼 것을 주섬주섬 챙기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안방으로 모셔 성체를 영해 드리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는 주로 며느리를 칭찬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며느리가 얼마나 잘 들어 왔는지 몰라요, 신부님! 제 맘에 쏙 들어요."

표정만 봐도 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하도 며느리를 칭찬하기에 물었습니다.

"며느리가 할머니 용돈이라도 두둑히 주시나봐요" 그러나 할머니는 뜻밖의 말을 하셨습니다. "웬걸요. 제가 챙겨 줘야해요. 있다가 갈 때 제가 10만원 손에 쥐어 줄 거예요. 아들이랑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얼른 정 붙으라고 제가 챙겨야 해요" 이어 할머니 설명을 소곤소곤 듣고 나니 그렇기도 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느리가 아들하고 정 붙이고 잘 살게 하려면, 제가 잘해야 해요. 요즘 시어머니들은 정 붙을 때까지 며느리 눈치봐야 해요."

할머니 말처럼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있어 시어머니는 더 이상 고양이 앞에 쥐가 아닙니다. 눈치만 보고 구박을 받는 불합리한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려웠던 관계가 시대가 바뀌면서 재조정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동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관계가 역전되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동등한 관계로의 나아감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았던 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가능한 것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른 희망도 가져 볼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 대한 정치인들의 태도도 변할 수 있겠구나! 과거 정치인들 중에는 일단 뽑아 놓으면 국민의 뜻과 상관없는 일들을 하고 앉아 있고, 선거철만 되면 반짝 나타나 90도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국민들은 의례건 정치인들은 그런 것이려니 또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새바람을 보여 주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행태를 보인다면 국민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가능성을 보인 것입니다. 며느리 눈치를 살피는 시어머니처럼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국민 무서운 줄, 국민의 의견 무시해서는 않되는 줄 알고 살피는 때가 왔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희망의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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