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5
소설 2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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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용아씨의 복수그의 죄목(罪目)은, 부녀자 매매, 강간 납치 도주 미수.즉, 쉽게 얘기해서 이곳 한벌성 안으로 들어와 가난하고 예쁜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강간을 해버린 다음 그 처녀를 딴 곳에 팔아먹고자 함께 데리고 성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려다가 주민 신고로 붙잡혀 들어온 자였다.

‘으흠흠……. 이 자의 취미가 바둑이라……. 마침 잘되었구먼.’그에 대한 신상기록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고 난 율량은 회심의 미소를 만면에 지어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율량은 곧 심복에게 명령하여 강치를 몰래 감옥에서 나오게 한 뒤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혀가지고 자기집 안방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봐! 강치. 자네가 바둑을 좀 둔다고 했지. 어때, 나와 한 수 겨뤄보지 않겠는가?”율량은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바로 앞에 놓고 앉아 있다가 지금 막 덜덜 떨며 들어오는 강치에게 이렇게 먼저 물었다.

“아이구, 나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 몸은 저 멀리 남쪽 해변 마을에 노모(老母)와 처자식을 두고 온 몸입니다요. 이곳 한벌성에까지 힘들게 찾아온 제가 돈을 벌어가지 못할망정 죽은 시체가 되어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니옵니까.”강치는 완전히 얼굴이 사색으로 되어져 율량을 향해 정신없이 넙죽넙죽 절을 해댔다.

아마도 이곳 한벌성에서는 죄인을 죽이기 바로 직전에 후한 대접을 미리 해준다는 얘기를 그가 어디에선가 어렴풋이 들어본 눈치였다.

“하하하……. 아무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가 바둑을 좀 둔다는 얘기를 내가 들었기에 바둑을 엄청 좋아하는 내가 자네를 청하여 한 수 겨뤄보고자 부른 것뿐이니.”율량은 넉넉한 미소를 입가에 지어보이며 강치를 어루만지듯 이리저리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그가 만 석 달째 감옥에 갇힌 채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등 모든 것들이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낯짝이 여전히 유들유들한 걸로 미루어보아 그는 원래부터 뚱뚱한 몸집의 소유자였음을 대강 짐작케 하였다.

강치는 처음엔 사지를 벌벌 떨어대며 경계를 몹시 하였지만, 그러나 율량과 바둑 몇 판을 연이어 두고나니 몸과 마음이 한결 풀어지는 듯한 눈치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바둑 실력은 율량이 그보다 몇 수 더 위였다.

그러니 율량은 자기 맘대로 수를 조절해가며 아슬아슬하게 그를 이겨버리던가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져주곤 하는 등 바둑의 흥을 자기 맘대로 돋울 수가 있었다.

율량이 이렇게 강치를 자기 집에 머물게 하여 아주 융숭한 대접을 해주다보니 어느덧 두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가까워져서 나중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였다.

강치는 이제 한벌성의 막강한 율량 대신과 자기 자신이 허물없이 굴어도 될 만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믿음을 확실히 갖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강치는 바둑을 막 끝내자마자 갑자기 쑥스럽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율량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저어, 율량 형님!”“왜 그러나, 아우!”“제가 형님께 어려운 부탁 한 가지를 드려도 되겠습니까?”“부탁? 그게 뭔지 어서 해보게나 아우.”“예. 제가 고향을 멀리 떠나온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사옵니다.

그러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처, 그리고 어린 자식들이 몹시 그리울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아무런 소식조차도 전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오니, 저 자신 무척이나 맘이 괴롭고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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