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끝은 새로운 시작인 것을
선거의 끝은 새로운 시작인 것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6.0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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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한덕현 <본보 인쇄·편집인>

오늘이 지나면 많은 게 달라진다. 선거(選擧)의 뽑는다는 의미는 곧 바뀐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선거의 가장 큰 묘미라고 본다.

변화가 없이는 희망도 없다. 조직이 그렇고 사람한테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오늘 선거를 통해 기존의 인물이 재신임을 받든 역으로 새로운 얼굴이 혜성처럼 등장하든 선거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모종(?)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을 설레게 된다.

교과서적인 얘기이지만, 선진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축제로 통한다. 깨끗한 후보가 나서 깨끗한 승부를 펼치고 그러고 나서 깨끗하게 승복한다. 선거에서 유독 페어플레이가 강조되는 이유는 이것이 안 될 경우 당연히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상황인지라 그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늘 그랬듯 선거 자체가 가히 사생결단이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고, 모든 선거의 흐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성의 경쟁구도가 아닌, 약육강식의 논리로만 점철됐다.

이번 6.2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의 선거전이 서로 찢어지고 갈라짐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선거의 숙명적인 업보를 재현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역사진화 과정의 결정적 단초는 그래도 선거였다. 그 선거가 때로는 잘못된 선택으로 국민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강요했더라도 선거는 때만 되면 전면으로 부각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대장정을 이끌어 왔다.

역시 이런 선거가 항상 옳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잘못 뽑아놓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슴앓이를 했는가 하면, 어느 땐 다시 원상복구를 위한 투쟁도 서슴지 않았다.

6.2지방선거 또한 지금으로선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조짐이다. 정책대결은 온 데 간 데 없고 서로가 극단적이고 원시적인, 한마디로 국민들의 의식은 분명 3D를 향하고 있는데도 정당과 후보들은 선거전 내내 아날로그식 정쟁만을 부추겼다. 선거가 끝난다고 해서 이를 한꺼번에 쓸어 담을 그릇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

시중에 나도는 여론처럼 무려 여덟 번을 찍어야 하는 초유의 부담감으로 깜깜이 투표에 의한 로또 당선자가 나온다면 그 후유증은 더할 것이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지역을 대표할 수도 있고 앞으로 4년간 이들이 만들어 낼 각종 일탈은 지금으로선 쉽게 예측할 수도 없다.

잘못 뽑았다 해도 그 책임은 결국 그를 선택한 유권자들의 몫이다. 그러기에 그 잘못된 판단에 대해 우리는 4년을 참고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하고 또 그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 하는 데도 방심하면 안 된다. 이는 투표권을 행사한 유권자의 금도이자 선거문화의 기본이기도 하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선거의 대명제는 이런 유권자의 책임감을 전제로 한다.

선거의 끝은 분명 새로운 시작이다. 결과에 대해 승복하라는 것도 이러한 새로운 시작의 첫 단추를 꿰기 위해서다. 때문에 6.2지방선거의 끝자락에서 굳이 희망을 말한다면 나는 이것들을 들고 싶다.

앞으로는 권력이나 정치권에서 제발 상대를 정조준하는 '단정적인 말'이 줄어들었으면 한다. 무슨 응징이니 척결, 단호, 심판, 색출, 원천봉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용어가 남발되는 사회분위기는 필히 상대적 소외. 이탈자는 물론 피해자를 양산하게 되고 그 결과는 사회적 분열과 해체다.

이처럼 극단의 용어들은 결국엔 그 발설자를 옥죄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의 교훈으로 체화(體化)하고 있잖은가.

그렇다! 선거의 대미는 승복이고 이것이 곧 통합과 화합, 그리고 조율과 포용을 가능케 할 것이며 선거의 최고 묘미라는 '변화'는 바로 이게 선행될 때만이 빛을 발하게 된다.

이번 6.2지방선거의 끝은 바로 이를 위한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너무 초조하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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