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스의 노래
아네스의 노래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5.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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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중략) 나는 기도합니다/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Poetry, 2010)'에서 양미자(윤정희 분)가 훌쩍 남겨놓고 떠났던 '아네스의 노래'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139분의 러닝 타임은 짧지만 길게 느껴졌다. 그의 영화가 올해 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것은, 소설로 말하자면 카프카상과 같은 국제적인 권위를 지닌 문학상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강물에 떠내려 온 아네스의 시신.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아네스를 맡긴 뒤에, 다시 하염없이 강물은 흘러갔다. 영화를 보면서 이문세의 노래 '소녀'도 기억이 났고, 이상은의 노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도 떠올랐다.

이창동의 제작 노트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아시다시피 이제 시(詩)가 죽어가는 시대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 '시 같은 건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읽는 사람도 있다.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관객들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영화가 죽어가는 시대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시가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생의 가장 뜨거운 순간을 시로 옮겨놓지 않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시는 상상력이요, 감정이요, 의식이요, 상징이요, 비유요, 몰입이요, 주관이요, 현실이요, 또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시를 쓴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이 거저 되지도 않을 뿐더러, 무한대(無限大)의 고독을 감내(堪耐)해야만 하는 것임을 어렴풋이나마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상(詩想)이 내게 찾아오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들은 시상을 찾아 부지런히 떠나야만 한다.

영화에서 미자는 서서히 명사(名辭)를 잊어가고 있었다. 가슴이 아릿자릿했지만, 좋은 영화를 본 답례로 알츠하이머병(Alzheimer病)을 소재로 한 시를 올려본다.

"나는 어설프다./어쩌면, 무척이나 개념이 없다./언젠가는 시내버스 요금을 몰라 택시를 탄 적도 있다./생면부지 타인에게 물어보기가 그래서./이번에는 요금을 내고 시내버스를 탔다./진풍경(珍風景)을 만났다./지팡이를 앞세운 채 탑승한/말끔한 용모의 노신사(老紳士) 때문이다./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를 몰랐다./답답해진 기사 양반이 다그치며 물었지만,/그는 자신에 대해 기억하질 못했다./고민은 짧은 시간에 제법 깊은 공유(共有)의 강을 건넜다./옆자리에 있던 다른 노신사가 두런두런 물어봤다./소용이 없었다./돌아오는 대답은 횡설수설뿐이었다./나는 시내버스에서 내렸다./노신사들을 태운 시내버스는 굉음을 내며 사라졌다./길을 걸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나는 그대로 시내버스 안에 있는 듯했다./꽝꽝 얼어붙은 모습으로."(자작시, '나는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어느새, 내 주변으로 이름 모를 소들이 구경꾼처럼 삑삑이 모여들고 있다. 우하하(牛何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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