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번이라도 내려와보셨나요?
언제 한번이라도 내려와보셨나요?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5.2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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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수녀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에 들렀다가 아이들 보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땅 속 세계에 관한 그림책이었는데, 땅속에 사는 두더지, 들쥐, 지렁이, 굼벵이, 개미, 그리고 각종 식물들의 뿌리 등을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늘 땅을 밟고 다니기만 했지, 사실 땅속에 어떤 생물이 사는지,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보니 땅속 세계 역시 수많은 동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훌륭한 생명의 공간이었습니다. 매일 밟고 다닐지언정 그 속에 대해서 참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주일학교 학생들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과 나들이를 갔습니다.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도는 가벼운 나들이였습니다. 평소에 어머니들은 미사 때 잠깐 뵙거나 아니면 아이들 간식을 해 주실 때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였으니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산성을 오르며 이런 저런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엄마이고, 무슨 신앙적인 체험이 있었고, 지금은 무슨 고민들이 있고, 또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감곡에 부임한 지가 벌써 4개월이 지났지만, 아이들 따로, 어머니들 따로 뜨문뜨문 알고 있어 교통정리가 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번 봄나들이를 하면서, 그분들 삶 속으로 조금 들어가고 나니 이제야 어떻게 가족관계가 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만났을 때는 잘 모르던 사람들을 이제는 속속들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산성 높은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니 청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서 내려다 보는 청주 시내는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고, 참 좋았습니다. 그 맛에 산에 오르는 것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 평화롭게 보이는 풍경은 눈에 보이는 것뿐이지 실제 그렇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저 아래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서로 아옹다옹 다투기도 하고, 제각기 이런저런 고민들을 가슴에 안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높은 곳어서 멀리 떨어져 보다 보니 그 세세한 표정들, 감정들을 볼 수 없고 그래서 전혀 동떨어진 느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곳에 있지만은 말아야겠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눈으로, 높은 곳에서 드는 느낌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 내려와 보지 않고, 자기가 보는 자리에서 판단하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나없이 모든 후보자들이 친서민, 친환경 공약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 공약처럼 그들은 서민들 속으로, 파괴되는 환경 속으로 내려와서 보고 듣고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멀어서 그 아래에서 무슨 고민이 있고, 무슨 어려움을 겪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인지 상위 10%부터 챙기면서 친서민을 말하고, 삽질로 강바닥을 파헤쳐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친환경을 주장하는 무리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어떻게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복면을 쓰고 강도 아니라고 말하는 코미디 같은 현실입니다.

제발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그런 막장 코미디에는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런 코미디에는 진저리가 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선거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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