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의 고무신 선거
2010년의 고무신 선거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0.05.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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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막걸리 한 잔, 고무신 한 켤레에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팔았던 시절이 있었다. 선거 때만 되면 막걸리와 고무신업계가 호황을 누렸을 정도였다.

허기진 배를 우선 채워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만큼 가난에서 허덕였던 1960~70년대의 선거풍경이다. 40대 후반 이상의 기성세대들이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그 당시 치러졌던 선거과정에서 막걸리와 고무신은 그리 생경하지 않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만 있으면 유난히 먹을거리가 넉넉해졌고 이장과 반장은 곗돈이나 탄 사람처럼 평소와 달리 씀씀이가 커졌고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마다 뿌린 고무신이 집 안에 몇 켤레씩 생겨난다. 후보캠프의 막걸리와 안주 인심도 후했다. 때문에 출타했다가 점심을 드시기 위해 귀가하던 평소와는 달리 선거 때면 어른들은 점심을 그곳에서 그렇게 해결하곤 했다.

그래서 선거 때가 되면 "우선 먹고보자, 받고보자"라는 말이 유행했다.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국민의 대표자가 국가의 의사형성과 국가사무 처리의 일차적 담당자가 되는 대의민주제의 형태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상황에서 국민이 대표자를 바르게 선출하는가 라는 문제는 곧 올바른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출발점이며,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선거는 국민들이 다양한 정치참가 중 하나의 수단이지만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가장 기본적이고 유력한 정치참가의 수단이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통로인 선거마저 잃게 되면 민주주의를 주장할 근거마저도 잃게 된다.

때문에 선거법이 지켜지는 공명선거가 매우 중요하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건국 이래 많은 선거를 치러왔다. 그 과정에서 '고무신·막거리 선거', '투표함 바꿔치기', '돈 봉투 선거' 등 금권·관권선거를 목도해 왔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한 진정한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이상적인 선거풍토를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당연히 공정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 시대적 소명이 헌법상 중요한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소명의식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막걸리·고무신 선거를 사라지게 했다. 하지만 금품선거는 여전했다.

이 때문에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됐고, 선거관리제도 개선, 선거공영제 확대, 선거의 공정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고 관련법 명칭도 '공직선거법'으로 바뀌는 등 수 차례의 크고작은 개정을 거치면서 부정·타락선거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급기야 지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부터 '50배 과태료 부과제도', '선거범죄 신고자 포상금 지급제도'등이 도입되고 시민사회단체를 주축으로 한 매니페스토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정책선거로의 성숙된 선거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럼에도 극히 일부에서는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하는 '고무신선거'를 시도하는 후보들이 나타나고 있다. 충북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방의원과 그 가족 등을 적발해 청주지검에 고발했다. 한 후보자 가족은 유권자들에게 현금 30만원과 음식물을 제공했고 또한 후보자는 현금 10만 원을 제공한 혐의다.

이 밖에도 크고작은 금품선거 행태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지위향상에 걸맞지 않는 선거풍토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후보자가 아닌 유권자들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지방자치 20년을 맞이한다. 성숙된 자방자치를 안착시켜야 한다. 이번 선거가 그래서 중요하다. 후보자는 물론 유권자들이 감시자로서 획기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이번 지선에서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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