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41회
실크로드 41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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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위로 저녁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농촌의 붉은 벽돌집은 중국전역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이다.

좌석에서 침대칸을 두 번 갈아타며 새벽 2시 경에야 난저우까지 가는 침대칸을 구할 수 있었다.

아침 7시에 난저우 역에 도착했다.

지아위관(嘉欲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오전 내내 잠을 잤다.

한 달 만에 모처럼 여유 있게 깊은 잠에 빠졌다.

난저우 역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인 란저우반점(蘭州飯店)은 보통 방은 180元 정도 하지만 5층에 있는 도미토리는 1인당 30元에 깨끗하고 저렴한 방을 구할 수 있다.

점심을 먹으러 인근 식당에 들렸더니 음식도 깔끔하고 서비스도 좋았다.

북쪽으로 올수록 여자들의 얼굴이 둥글어지고 넙적하며 피부색이 남방보다는 흰 편이다.

오후 5시에 호텔을 나섰다.

란저우는 깐수(甘肅)성 중앙에 위치한 성도로서 정치와 경제, 문화, 상업의 중심지며 서북지역 교통의 중심지이자 여행자들의 휴식처다.

예로부터 실크로드를 가는 요충지로 발전했으며, 한족 이외 회족과 티베트족, 몽고족 등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오천산 고원과 바이타산(白塔山) 공원을 잇는 대로가 시가지의 중심가이다.

버스를 타고 황하강을 따라 중국에서 가장 긴 녹색거리를 달렸다.

20분쯤 달려 황하 제일교에 도착했다.

황하강이 도심을 관통하고 있다.

황톳물이 흐르는 제일교를 지나 바이타산(白塔山) 공원에 도착했다(입장료 6元). 산 정상에는 원나라 때 건축되고 명, 청 시대에 증축된 백탑이 있어 바이타산이라 부르고 있다.

바이타산은 칭기스칸에게 인사하러 가다가 란저우에서 입적한 싸쟈파이 라마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한다.

메마르고 푸석푸석한 산길을 오르면 법우사 사찰이 나타난다.

산정에 오르자 백탑주변에 둥군 회랑으로 만든 목조건물과 쉼터가 나타나고 7층 8각형으로 만든 17m 높이의 백탑이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다.

바이타산에 오르자 난저우 시가지와 황하의 황톳물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난저우시는 남북으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동서는 오이처럼 좁고 길게 누워 있다.

고층 건물들이 저녁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도시 주변 산들은 녹화사업으로 나무를 심었으나 멀리 보이는 민둥산들은 진흙으로 덮여 메마르고 건조하게 보였다.

사막지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입구인 난저우의 풍경은 지금까지 답사한 다른 도시와는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하서회랑이란 황하 서쪽의 길다란 복도라는 뜻이다.

즉, 황하의 서쪽부터 둔황에 이르기까지 북쪽의 고비사막과 남쪽에 길게 뻗은 기련산맥 사이에 동서 약 1000km 정도의 띠 모양으로 생긴 지역을 하서회랑이라 부른다.

하서회랑은 중국 내륙의 동서를 잇는 동맥인 동시에 북쪽의 몽고 초원 유목민과 기련산맥(祁連山脈) 너머 남쪽에 본거지를 둔 티베트족을 이어주던 연결고리인 십자로였다.

기련산맥의 만년설이 흘러 내려 하서회랑에는 자연발생으로 생긴 오아시스가 많아 서역으로 왕래하던 대상들이나 구도자들이 북쪽의 거친 고비사막을 피하고 이 지역을 지나게 되면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교역로가 되었다.

황하가 저녁노을에 더욱 더 붉게 흘러가고 있다.

유람선이 한가로이 지나가는 남쪽에는 오천산(五泉山)이 마주보고 있다.

한무제 때 곽거병 장군이 흉노를 정벌하러 이곳을 지날 무렵 병사들이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겪자 차고 있던 장검으로 산허리를 찔렀더니 시원한 물이 다섯 군데에서 솟았다 하여 오천산이라 불려지고 있다 한다.

바이타에서 내려와 시내를 구경했다.

건물들이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옷 입은 모습도 세련된 편이다.

저녁은 KFC가게에서 닭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햄버거 가게와 마찬가지로 매장은 앉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저녁 9시까지 시내 중심가와 과일가게, 먹을거리 골목 등을 다니며 난저우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구경했다.

호텔부근에 있는 려도반점(麗都飯店)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바닥이나 주변을 부지런히 청소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 맞이하는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바이인 가는 오전 11시 45분 버스를 탔다(13元). 시외로 벗어나자 산들은 진흙덩이를 다져놓은 것 같이 답답하게 보였다.

까마득한 산 능선으로 파이프를 설치하여 물을 뿌리며 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바위 하나 보이지 않은 황토 흙과 산들, 1시간 만에 보이는 척박한 작은 마을, 길가에 늘어선 옥수수 밭과 집단부락들이 나타나고 작은 읍내를 지났다.

오후 1시 40분쯤에 바이인시에 도착했다.

도로 양편을 따라 작은 밭이나 들판이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은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척박한 황무지다.

벌거숭이산들은 중국정부에서 대대적인 조림사업을 실시하여 작은 나무나 풀을 재배하고 있다.

바이인 버스역(白銀汽車)에서 10여분 걸어서 버스를 갈아타고 수이촨(水川)행 버스에 올랐다.

길가에 드문드문 눈에 띄는 수박덩이들과 옥수수 밭, 1시간 내내 달려도 인가조차 없는 황량한 붉은 산들, 비가 내리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황토흙과 민둥산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 이것이 사막지대의 시작이구나 하는 실감이 조금씩 피부에 젖어들었다.

오후 3시쯤에 수이촨에 도착했다.

아스라이 펼쳐놓은 높은 산맥들은 양파껍질처럼 알몸을 겹겹이 포개어 놓고 있어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들판의 옥수수 밭 위로 떠있는 뭉게구름이 붉은 민둥산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기이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막의 분위기가 땀방울 속으로 한 올 한 올 스며드는 기분이다.

수이촨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황토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달리면 시골 마을 바이인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해마다 5월 1일을 전후해서 황허따샤기촨(黃河大峽奇觀) 여행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다.

도시와 근접한 황하인 수이촨따샤(水川大峽)에서 벌어지는 이 축제는 이 지역의 자연 경관과 각종 민속을 결합시켜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황하의 첫 모습을 만드는 수이촨따샤의 경관은 물론이고, 전통악기인 태평고 연주 등이 볼만한 구경거리다.

진흙토담으로 이어진 좁은 시골마을 길을 걸으면 커다란 철교가 황하강 위에 놓여 있다.

철교 위에서 시골농부가 밀 타작을 한창 진행 중이다.

메마른 황톳물만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60년대 우리나라의 작은 시골마을이 연상되는 곳이다.

그 동안 성도(省都)와 문화관광유적을 중심으로 탐방하였지만 사막과 황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런 작은 마을은 처음이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이 한적한 시골마을의 고요와 소박함을 담아 가지고 간다는 것도 또 다른 여정의 아름다운 추억이라 생각된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경관이나 유물만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메마르고 한적한 시골마을에도 하루 밤을 묵어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 바로 관광자원이다.

저녁에 지아위관(嘉欲關)행 열차를 타야하기에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며 이방인을 바라보는 천진한 아이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털털거리는 낡은 차량들이 부지런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붉은 벌거숭이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여서 황하를 만들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강 색깔이 황톳빛이 아닌 맑고 푸른 색깔이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강원도 태백시 탄광촌 아이들이 사생대회에서 강물을 시꺼멓게 칠해 한동안 화제가 되었듯이 이 아이들에게도 강이란 황토색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경관이다.

마을 공터에서 버스를 타고 20여 분 기다리자 승합차 좌석이 차서 출발했다.

이곳에선 버스의 출발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좌석이 차는 때가 출발시간이다.

옆 좌석에 탄 아이들의 표정은 즐겁고 밝아 보인다.

순박한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빛나고 있다.

/시인·극동정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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