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어텍스 샀다고 생각하지 뭐
고어텍스 샀다고 생각하지 뭐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5.0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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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음성 감곡성당 보좌신부>

컴퓨터를 켜 놓고 밖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화면보호기가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성지순례때 찍었던 사진이 한장씩, 한장씩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가만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그 시절 감동과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중 이집트에서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몇 동기 신부들이 그곳 사람들이 햇볕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썼던 터번(흰 수건)을 사서 쓰고 재미있어 하는 표정의 사진도 보였습니다. 사실 그때 우리들에게는 터번 때문에 재미난 사건이 하나 생기기는 했습니다.

이집트는 관광수입에 많은 부분 의존하는 가난한 나라였고, 그래서 순례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순례객을 보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자기 물건을 사달라 졸랐습니다. 그런데 가만보면 그들이 파는 물건이란 하나같이 조잡한 기념품과 허술한 민속품들이 다였습니다. 그 물건들 중에 하나가 터번이었고, 그들은 '완 달라! 완 달라'하며 우리들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몇몇은 '원 달러'면 비싼 것도 아니고, 그것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 좋은 기념이 될 것 같아 너도 나도 하나씩 사서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누군가는 그 터번을 1달러가 아니라 무려 20유로나 되는 비싼 값으로 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돈 1100원이면 살 것을 3만1000원을 주고 산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해외에 나간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모든 것이 신기했고, 그런 것을 보고 다니자니 당연 행동이 굼떠, 일행에서 뒤쳐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동기 신부 하나가 일행 중에서 떨어져 혼자 오게 되었는데, 그는 얼마 안가서 장사꾼들에게 둘러 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물건들을 보이며, 짧은 영어와 손발을 이용해 물건을 사라 간청을 했습니다. 착한 심성의 동기신부는 그 간청에 못이겨 터번에 관심을 보였고, 그들은 친절하게도 그것을 뜯어 머리에 벌써 씌워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잘 어울린다, 최고다 칭찬을 해 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른 비싼 가격을 듣자 난감해졌습니다. 아무리 외국인이라 해도 그것은 터무니 없이 비싼 금액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너무 비싸다면서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그들의 태도는 돌변해 패거리를 불러 모았고, 총을 찬 관광 경찰까지 불러댔습니다. 그러면서 뜯었기 때문에 다시 팔 수 없고, 그러니 꼭 사야 한다며, 위협을 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홀로 양의 탈을 벗은 외국인들에게 둘러 싸이게 된 이 친구는 신변에 위협을 느꼈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 터번을 사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우리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터번을 뒤집어 쓰고, 조잡한 기념품 몇개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우리 일행은 늦은 그 친구에게 핀잔을 주자, 그 친구는 억울한 듯 자신이 당한 일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위협을 받으며 바가지임을 알면서도 산 것이니 사실 그 친구는 많이 속이 상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신부는 이런 말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여 우리 모두를 배꼽잡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고어텍스 터번 샀다고 생각하지, 뭐…." 똑같은 싸구려 면으로 된 천이었지만, 자신의 것은 등산장비를 만드는 특수섬유 고어텍스 천으로 된 것이라 자기 최면을 걸며, 화를 삭혔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지난 2년전 경제성장이라는 약속에 속아서 고어텍스 세종시, 고어텍스 4대강을 떠안게 되었고, 그 비싼 값을 치르느라 씁쓸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 비싼 대가는 힘없는 사람들에게서 빼내어 채워지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들의 허리는 휘고, 또 힘없이 당하는 산하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우리에게 희망의 소식이 한 가닥 들려 옵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며 억울해도, 속상해도 체념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6월이면, 그 속상한 우리 마음을 하소연할 자리가 마련된다니 말입니다. 오는 6월2일에는 꼭 우리 모두 함께 몰려가 조직화된 우리의 힘을 보여 주며, 가짜 고어텍스를 반납하고, 우리의 몫을 당당히 찾아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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