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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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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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카바이드 불빛 아래 쭈그려 앉은 여자, 느린 자전거 한 대만 쓰러져도 모두가 다칠 것 같은 밤의 시장길 모퉁이에 이마 주름살 따라 흔들리고 있는 여자, 자기 앞의 생(生)인 듯 똬리 틀고 있는 순대를 쭈욱 들어올린다 그 때 잠깐 펴지는 이마의 주름살, 정가표도 없는 여자의 바코드가 환해진다여자의 주름살은 편의점과 백화점에 길들여진 내 생활(生活)을 긁는다 시간이 낸 길 따라 애옥한 삶에 흔들거릴 줄 아는 여자의 이마, 꼬깃꼬깃 천 원짜리 몇 장에 취기(醉氣)를 더욱 취하게 할 줄 아는 여자의 바코드가 내어준 순댓국을 언저리 뭉뚝한 뚝배기 가득 먹는다, 구불구불 슬픈 바코드-시집 ‘목숨’(천년의 시작) 중에서<감상노트>꼴린 적 많고 뒤집힌 일 깊어 배알이 뒤틀린 채 튀어 나왔는데, 죽기 직전에 배내똥 다 쓸어내고도 허전한 듯 속을 빵빵하게 쟁이고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허기진 순대가 있는 허름한 국밥집이다.

순대를 파는 사람은 죄다 슬픈 바코드가 있다는 듯, 유심히 바라보는 젊은 시인의 젖은 눈빛이 발광한다.

그는 아주머니의 바코드를 읽고 난 후에야 취기가 오른다.

구불구불한 가계가 입력되고 애옥한 순간이 겹친다.

그래도 덤이 있는 순대가 가라앉고, 뜨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니 좋다.

몇 천 원에 들린 검은 비닐봉다리가 흔들리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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