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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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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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뭐하는 곳이니? 너희들은 무엇 하러 학교에 왔니?”새롭게 한 학년을 시작하는 3월 첫 날마다 내가 맡게 되는 학급 아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하면 그때부터 우리들의 ‘학교’는 아이들에 의해 단순히 ‘공부하는 곳, 시험 보는 곳’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이상의 다른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 즈음 새로운 질문을 내놓아 본다.

“그러면 학원은 뭐 하러 가니? 너희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학원하고 학교는 무엇이 다르지?”결국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인정을 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학교와 학원을 동일시하며 대접받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생각이 무조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 속한 가정과 더 크게 보면 이 사회가 그렇게 생각하게끔 유도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다시 이야기를 교실로 옮겨 아이들의 생각을 고쳐보려고 애쓴다.

학교는 물론 공부하러 오는 곳이지만, 공부보다는 ‘사람됨’을 만드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라고, 그리고 공부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선생님이라고.만약 이 이야기에 동의하게 된다면 학교생활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들은 바른 행동과 기본 질서 지키기, 남을 배려하기 등의 인성교육이 될 것이다.

바른 인성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각각의 교과 지식을 하나씩 배워가고 익히면 사회 어느 곳에서 일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바른 지식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설명하다보면 어느새 내 얘기에 나만 빠져 있는 것에 깜짝 놀란다.

그럴 때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이 있다.

“사랑의 반대는 무엇일까?”내가 예상한 답은 미움, 싫어함, 괴롭힘, 저주와 같은 말들이다.

역시 예상이 벗어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이들의 입에서 그러한 말들이 나올 때 부모님의 마음에서 생각해 보라고 넌지시 화제를 돌려 본다.

부모님이 싫었을 때를 말해 보라고 하면 대개 잔소리하실 때나 나를 혼내실 때가 많이 나온다.

그러면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러실까. 아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식인데 자식이 싫어할 줄 알면서도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시고, 더 큰 기대를 가지고 타이르신다.

이제 어느 정도 정답을 눈치 채는 녀석들이 나타난다.

“선생님, 사랑의 반대는 관심 가지지 않는 것, ‘무관심’ 아닙니까?”휴, 이제야 나의 첫 시간을 마무리 할 때가 온 것이다.

굳이 옛 이야기나 성현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선생님의 마음은 부모님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이나 부족함을 느낄 때 그냥 지나쳐 버리고 나면 더 편한 것이 선생님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사람이니까 하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그 행동만 고치면 더 좋을 텐데. 이렇게 바른 정리정돈 습관을 가지면 앞으로의 생활에서 더 편할 텐데. 이것은 꼭 알고 있어야 다음 학년 공부에 도움이 될 텐데.’ 하며 한마디 더하며 욕심을 내게 된다.

사랑으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마디라도 던지며,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지적하고 타이르며 칭찬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선생님들인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가 되지만, 그러한 바탕에는 그 아이를 관심 가지고 지켜보며 다가간 선생님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부모님들이 넉넉히 이해하고 감싸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열정을 가진 선생님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역시 부모님들이다.

지금도 많은 선생님들은 어떠한 형식적인 교사 평가 시스템보다도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더 두려워하며, 그 눈망울에 무엇을 채워 주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내 사랑스러운 자식의 부모님처럼.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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