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에게 털린 것
김길태에게 털린 것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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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감곡성당보좌신부>
사람들은 마술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마술이 눈속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을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마술에는 가만 보면 어떤 패턴이 있습니다. 뭔가를 '뻥!'하고 크게 터뜨려 우리의 눈이 그쪽으로 쏠리게 하고, 그 순간에 날렵한 손놀림으로 없던 것을 꺼내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악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매치기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누군가를 털기 전 사전 작업을 합니다. 바람잡이가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인다거나, 큰 소리를 쳐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정신 줄을 놓는 순간 있는 것을 다 털리는 것입니다.

요즘 방송과 신문의 1면 기사는 강간살인 용의자 김길태의 이야기뿐입니다. 흉악범죄인 강간사건들은 연중 내내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유독 대박을 터뜨리며 연일 범인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보도되고 있습니다. 급기야는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하고, 사형제도 역시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들로 들끓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 어떤 정치인은 '좌파교육의 결과다'라며 억지 주장까지 내뱉고 있습니다. 김길태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때 교육을 받았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뭔가를 찾고 있던 그들에게 이번 사건은 때마침 잘 터져준 효자 사건()인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대로 김길태 사건은 우리가 다른 것을 생각 못하도록 정신을 온통 쏙 빼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가 정신을 빼앗기는 사이, 우리가 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2주전 금요일에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4대강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 발표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천주교의 사회참여는 정의구현 사제단과 정의평화 위원회 같은 단체에서 종종 해왔습니다. 그때마다 천주교회의 최고 어른이신 주교님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던 주교님들께서, 이번에는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공식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나오셨으니, 이는 그 자체로 큰 이슈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주교회의의 결정은 바로 천주교 공식입장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신문이고 방송이고 대서특필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신문에서는 아예 다루지도 않았고, 다뤄졌다 하더라도 아주 작은 기사로만 편집됐습니다. 어떤 방송은 아예 보도하지도 않았고, 보도를 해도, 단신으로 보도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김길태 사건이 바람잡이를 제대로 하는 통에, 이 일은 신문과 방송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고 그냥 소리 없이 묻혀 버린 것입니다.

아름다운 산과 강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사형선고를 받았고, 포클레인의 채찍을 맞고, 굴착기라는 창에 찔려 피 흘릴 운명을 맞고 있습니다. 마침내는 콘크리트 못에 못박힐 것이고, 점차 썩은 물과 함께 죽어갈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정성을 잃고, 이기적인 보도만을 일삼는 방송과 신문을 들여다 보고 있기 때문에 이 현실을 알지 못합니다. 잘 모르면서 그들의 행보에 손뼉을 치고 동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가 가신 죽음의 십자가 길을 환호하고, 손뼉을 쳤던 무지한 예루살렘 시민처럼 말입니다. 그 무지와 무관심이 하느님을 죽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역시 우리 생명의 젖줄인 강을 죽이고, 삶의 터전인 땅을 파헤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몰랐다고, 관심이 없었다고 변명을 한들 책임이 없겠습니까 십자가 길에 손뼉을 치고, 환호를 보낸 유대인들에게 예수 죽음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요즘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김길태의 사건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바보로 알고 있는 것인가?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지만, 저들의 검은 속을 알면서도 오며가며 보고 듣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또 중요한 것을 하나 둘 놓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정녕 김길태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은 여중생의 목숨만이 아니구나. 우리가 정신 줄을 놓는 사이에 산과 강까지 소매치기 당했구나' 씁쓸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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