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1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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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 중에서)머물러야 할 곳과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나의 분수와 주제에 맞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다.

지난 겨울 모임에서 대천으로 MT를 갔었다.

집을 떠난 설렘으로 잠을 못잤는데도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바다 보러 가자”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옷을 챙겨 입고 바닷가로 향했다.

날씨가 흐려서 일까. 해가 뜨지 않아서 일까. 서해바다의 아침은 뿌연 잿빛이었다.

어디가 바다의 끝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평소 사진을 즐겨 찍으시는 선생님은 “와∼ 예쁘다, 멋있다”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시다.

나는 조용한 아침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의 일, 사랑하는 사람들, 지난 일,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생각들 갖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스쳐지나갔고 모래사장을 거닐며 점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넓은 바다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른 아침 바닷가에는 운동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우리처럼 아침바다를 보러 나온 사람들도 간간이 보였다.

물이 빠져 드러난 바위에는 조그마한 조개들이 박혀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어색한 포즈를 잡고 사진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은 바닷가를 거닐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셨다.

“안 가르쳐 주지∼”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며칠 후 내 생일날 점심밥을 함께 먹었는데 선생님께서 “이걸로 생일 선물을 대신할 수 있을는지….”하며 무언가를 내민다.

“뭐에요?”하며 받아보니 그날 바닷가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이었다.

“고마워요”하고는 가방에 넣었다.

저녁 때 집에 와서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평소에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를 잘 아는 듯 온통 멀리서 찍은 사진이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나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사진에서 어색한 포즈를 잡은 사진까지…, 그러다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멈췄다.

그건 백사장을 거닐고 있는 나의 뒷모습이었다.

앞모습은 거울을 보면 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내가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내가 아닌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 걷는 뒷모습에서 나는 알 것 같은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날 모래사장을 거닐며 인생에 대해 조금은 무게 있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내 뒷모습에서 그날의 표정이 배어나고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 세일즈를 오래하신 어느 분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사람의 뒷모습만 보아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돈이 많은지 없는지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뒷모습에서 배어나는 또 하나의 표정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닐까? 늘 시간에 쫓기여 잰걸음으로 다닐 때가 많다.

뒷모습의 표정을 읽을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나버리는 시간도 많다.

거울을 보며 웃어 보이는 얼굴표정 뿐 아니라 내가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나, 뒷모습까지도 아름다울 수 있도록 밝고 좋은 모습으로 살아야겠다.

지금까지 ‘백목련’에 글을 쓰며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이도 아니고, 필력도 없는 내가 묵히지 않고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 모든 마음들이 좋은 경험으로 남아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글씨기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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