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여행
봄맞이 여행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3.0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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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오창근 <E.M.S 학원 중등 원장>

페루의 고대 문명 마추픽추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다랭이' 마을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다. 비탈진 언덕에 찼ㆎ이 만든 논을 보니 어지럽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우뚝 솟은 마을 뒷산에 밭뙈기하나 만들기도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을 본다.

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며 민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저들의 조상은 한 평의 논을 만들기 위해 돌을 주어 논두렁을 만들고, 눈이 시린 해풍을 맞으며 손톱이 닳아 피멍든 삶을 살았으리라.

지붕에 그려진 국화꽃이 이채롭다. 계단 같은 논에 봄풀이 자라 파랗게 색칠하고 지게 지고 다니던 고단한 삶은 황토로 깔아 호젓한 산책길이 된다. 무심히 떠 있는 저 섬들과 가파른 절벽에 자리 잡은 숱한 무덤을 보며 사람이 환경을 극복하며 한 숟갈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긴 시간을 본다.

절벽 아래 파도가 부서지며 외롭게 떠 있는 서너 척 고깃배 섬이 되어 있다. 밭과 논을 일구기 위해 수많은 돌을 주어 나르던 그때 그 사람들은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파른 이곳에 목숨을 절벽에 매달고, 가난의 고통을 지게에 짊어지고, 잎담배 말아 펴 허리의 통증을 달래며 한 세월 그렇게 살았겠지.

시원한 바닷바람 맞고 자란 측백나무와 붉은 꽃망울 터트리는 저 동백의 자태가 봄이 왔음을 말해준다. 노란 유채 푸성귀 나물로 무쳐 먹으면 입가에서 봄은 싱그러운 향으로 피어난다. 고단한 삶의 흔적이 명소가 되어 사람들 발걸음을 모으고 해물파전에 막걸리 들이켜며 지난날 고향을 추억하듯 논두렁을 거닌다. 낯선 광경 카메라에 담고, 흘러가면 추억으로 각인될 그리운 마음에 사진을 찍는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어딜 가도 바다가 눈을 쫓아 따라오고, 그루터기 논에 잡풀이 파랗게 돋아 푸릇한 채소를 심어 놓은 듯하다. 정월 대보름에 동네마다 푸른 대나무 낟가리로 세우고 멍석 위에선 윷가락이 넘어진다. 막걸리에 돼지 머리 고기 김치에 얹어 먹으며 늙은 아낙네들 덩실거리며 춤을 춘다. 지나가는 마을마다 똑같은 풍경이 새롭다. 아직도 저렇게 정월 대보름을 큰 명절로 여기며 지내는 풍경이 신기하다. 달집을 태우며 한 해의 소망을 비는 모습들 속에 풍랑에 몸을 맡기며 위태로운 하루를 살아간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들여다 본다.

차 문을 열고 달려도 춥지 않은 삼월. 벌써 이곳은 봄의 문턱을 넘어선 지 오래다. 어둑해진 저녁 무렵 산과 바다의 구분이 없어져, 촘촘히 밤을 밝히는 불빛들로 바다와 마을의 경계를 눈치챈다.

내일 비가 오고 산간지역에는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들리지만, 이곳에는 파란 비가 내려 싱그러울 것 같은 완연한 봄에 마음마저 풀물이 든다.

허리 펴고 하늘을 보는 짧은 시간, 마음에 담아갈 좋은 추억이 많았으면 좋겠다. 황홀한 불빛으로 치장한 다리가 보인다. 넘어서면 삼천포다. 횟감 안주에 내가 취해 바다가 쓰러지는 저녁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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