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님, 고맙습니다
형수님, 고맙습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2.2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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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오창근 <E.M.S 학원 중등 원장>
나이가 들어도 명절을 앞두고 설레는 맘은 변하질 않는다. 명절 음식 장만에 '명절 증후군'을 앓는다는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두통과는 아랑곳하지 않게 오랜만에 술잔 놓고 안부를 묻는 명절이 기다려진다. 차로 사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보은으로 설을 쇠러 가다가 이제는 형님이 사시는 먼 창원으로 가다 보니 도로 정체가 남의 일이 아니다.

선물 꾸러미를 주섬주섬 챙겨 굳이 다음날 일찍 출발해도 될 일을 고집을 부려 밤늦게 출발을 해서 새벽에 닿을 예정으로 부산을 떤다.

눈길이니 내일 천천히 오라는 당부의 말씀도 있었지만, 큰며느리로 각종 제사와 명절에 음식 장만으로 고생하시는 것을 알기에 일찍 가서 같이 음식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구구절절하게 아내에게 설명한다.

이십대 초반에 한 시간마다 있는 버스를 타고 와야 하는 시골구석에 형님 손에 이끌려 오셨다. 내가 처음 본 것이 고등학교 이 학년 때이니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날렵한 몸매에 경상도 억양이 왠지 낯설어 겸연쩍어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눈앞에 펼쳐진 논밭이 모두 우리 것이라는 형님의 말에 속아 결혼했는데 큰 조카 낳고 보니 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웃던 기억이 난다. 검은 그을음과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밥을 짓고, 팔 남매 대가족의 큰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해 온 삶을 안다.

관절염에 무릎이 아파 쩔룩거리며 혼자되신 아버지를 위해 매 식사에 다른 반찬 올리려 애쓰는 것을 잘 안다. 대학 다니는 시동생 등록금도 대주고 매번 있는 집안 대소사에 몸을 움직이고 돈을 쓰며 맏며느리 역할에 모자람이 없다. 단출하게 형제만 있고, 위로는 여섯의 시누이 등쌀도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지가 이십오 년을 넘어선다.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채근하며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집사람 묵묵히 따라나선다.

간혹 집안 간에 사이가 벌어져 명절에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이유를 들어보면 작은 서운함이 불신으로 굳어진 경우와 제사 문제나 재산문제 혹은 부모 모시는 문제들로 인한 반목으로 남만도 못한 관계가 되어 원수 아닌 원수로 지내는 경우도 많다. 구구한 사연을 듣노라면 짐짓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작은 욕심이 화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덕군자가 아닌 이상 서운함과 원망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재의 처지는 훗날 뒤바뀌게 된다. 아이가 어른 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된다. 말을 가리고 행동을 무겁게 옮겨 오늘이 아닌 미래를 생각하며 옷깃 여미듯 조심스러운 행보를 한다면 무리 없이 오늘을 살 수 있다.

새벽 두 시에 도착하니 형수님 대문 밖에 나와 반겨주신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형수님과 아내 전을 부치고 형님과 난 가까운 산에 올라 집안의 이러저러한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체구가 큰 형수님 옆에 달라붙어 거드는 아내의 모습도 보기 좋다.

모두 출가하고 단출하게 남은 가족이지만, 정정하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그리고 형님과 술 한잔 나누며 종일 고생한 형수님께 감사를 표한다. 차례 드리고 나선 음복주 형수님께 권하며 맏며느리로 살아온 삶의 노고를 맘으로 전한다.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나서 아내와 내가 형님 내외 앞에 서서 세배를 드리고 당신들 맞절로 받는다. 어머니 안 계시니 내겐 형수님이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고맙고 감사한 맘을 다한다. 또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형제가 되길 가득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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