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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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0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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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월 1일은 노동절이라 하여 노동자들은 하루를 기념하며 쉰다.

노동절이 탄생하게 된 것은 1886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놀기만 하는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 넣고,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울 때,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1주일에 7∼8달러의 임금으로 월 10∼15달러 하는 허름한 판잣집의 방세 내기도 어려운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고, 공장굴뚝에서 나오던 연기도 보이지 않고, 상가도 문을 닫자 운전기사도 따라서 쉬었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세계가 멈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날이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노동절의 시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며 전 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최초로 치렀으며, 1945년 광복되기 전까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굽힘 없는 행사는 계속되어 왔다.

광복 이후 1945년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하 전평)는 1946년 20만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노동절 기념식을 성대히 치렀다.

미군정과 미군정 비호아래 탄생한 ‘대한노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적인 전평 파괴로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되고 검거되기에 이르렀다.

1957년 이승만은 “노동절은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되도록 하라”는 말에 대한노총은 노총결성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결정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여왕벌을 먹이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꿀만 나르는 꿀벌처럼 일 잘하는 ‘근로자’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껍데기만 남아있던 노동절마저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해마다 근로자의 날에는 산업역군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열심히 일한 노동자를 모범 근로자로 뽑아 상을 주었다.

노동절도, 단결을 의미하는 노동자란 이름도 박탈당한 남한의 노동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밤낮없이 일만하고 사회로부터는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우는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노동자란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즉 정신적·육체적으로 용역을 제공해 주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인 것이다.

대통령, 시장, 군수, 돈을 받고 고용된 사장 모두가 다 그렇다.

다만, 그들은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조합원 자격이 없을 뿐이다.

자본가와 자영업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국민 중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 수가 대략 1300만명에 이른다.

늦었지만 공무원도 스스로 ‘노동자’ 임을 깨닫고 지난날 정권의 하수인이며 부정부패의 장본인이었던 것을 뼈저리게 통탄하고 공무원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대다수 공무원들은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것은 60여 년간 정권의 하수인으로 길들여져 온 탓도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동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들이 올바른 노동자 의식을 갖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나라를 올곧게 바로 세워야 하는 역사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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