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54>
궁보무사 <5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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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근장의 분노

물론 이치로 따져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겠지만 이런 것들이 세상에서 자기 딸이 제일 착하고 예쁜 줄로만 알고 있는 한벌성주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이어 계속되는 이러저러한 일들이 모두다 팔결성주 오근장의 농간임을 결국 알아차리게 된 한벌성주는 마침내 크게 화가 났다.

‘에잇, 살찐 쥐새끼 같이 생겨먹은 놈! 내 이놈을 당장.’한벌성주가 참다못해 군대를 동원하여 미호강물 너머에 있는 팔결성을 직접 치러 가겠다고 나서자 주위의 신하들이 서로 앞 다투어 이를 말렸다.

“성주님! 함부로 군대를 움직여서는 아니 되옵니다.

이건 신중히 결정하셔야만 할 중차대한 일이옵니다.

”“놈 때문에 우리 한벌성 백성들이 지금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고 있고, 게다가 놈은 한때 자기 아내였던 우리 딸아이에 대해 온갖 추악하고 더러운 입소문을 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런 수모를 어찌 가만히 참고 견디란 말인가.”“하지만 성주님. 대체 누구 좋으라고 팔결성을 치러 가십니까. 지금 우리 한벌성을 노리고 있는 성(城)들 숫자가 열 손가락을 모두 내어 세어봐도 모자를 지경인데…….”“그럼 대체 날보고 어찌하란 말이요?”“성주님! 본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맞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겠사오나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우리 측의 피해가 있을 것이 온즉 이러한 방법을 쓰면 어떨는지요.”그때 율량 대신이 성주 앞으로 나와서 슬며시 이런 계책을 내었다.

즉, 미호강 줄기를 따라 소수의 한벌성 병사들이 한밤중에 몰래 배를 타고 가서 팔결성 소유의 황금벌판을 통째로 불 질러 버리자는 것.불이야 아무 때 어디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니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악착같이 모른다며 시치미를 똑 잡아 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심증은 가되 결정적인 물적 증거가 없으니 직접 당하는 입장으로 보면 이보다 더 억울하고 분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한벌성주는 율량의 그 계략이 매우 좋다고 여겨 즉시 실행에 옮기도록 허락하였다.

먹구름이 별과 달을 완전히 가리고 있어서 칠흑같이 어두워진 어느 가을 늦은 밤.작은 배를 타고 미호강을 몰래 건너가 기름진 오창 평야 둔덕 앞 갈대 숲에 다다른 일단의 한벌성 병사들은 미리 준비해온 여우와 고라니, 담비 등등의 짐승 꼬리에 기름칠을 하고 불을 댕긴 후 이리저리 휙휙 골고루 집어던져놓고는 얼른 되돌아왔다.

꼬리에 불이 붙은 짐승들이 뜨거운 불 맛을 이기지 못하여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바람에 그 널따란 오창 평야 곳곳에 불이 붙어 마침내 큰 불이 나고야 말았다.

난데없는 불벼락으로 한참 추수를 해야 할 오창 평야의 황금 들녘이 갑자기 시뻘건 불바다로 변했고, 이것은 자그마치 이틀 밤을 계속 타버렸다.

“말짱한 이곳에 갑자기 불이 나다니, 이건 틀림없이 한벌성주 놈이 시킨 짓이다.

내 보지 않아도 다 안다.

암! 틀림없다.

”팔결성주 오근장은 크게 화가 나서 팔팔 뛰어댔다.

한참 알곡을 거두어야만할 황금 평야가 순식간에 시커먼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으니, 그로선 복장을 치며 환장을 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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