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 한번 받아보았으면
그 마음 한번 받아보았으면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2.0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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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감곡성당보좌신부>
설 명절이 머지않았습니다. 설이면 아이들은 세뱃돈 받을 생각에 기대가 큽니다.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세뱃돈 준비에 정성을 들이지요. 90이 넘으셨던 우리 외할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답니다. 외할머니는 이를 대비해 자녀들이 평소에 조금씩 드리는 돈을 차곡차곡 모으셨습니다.

그렇게 모은 쌈짓 돈을 설이 가까워 오면, 새 돈으로 바꿔 달라 하셨지요. 당신 마음속에 가득 들어 있는 손자, 손녀를 위해 나름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외할머니가 준비한 빳빳한 새 돈은 당신 속에 품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음이었습니다. 돈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이었지요.

어머니에게 있어서도 새 돈은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돈이 생기면 별로 때가 묻지 않고, 깨끗한 놈들을 골라 내셨습니다. 그 놈들을 모아 책갈피 한 곳에 보관하셨지요. 어쩌다 다른 돈이 생기면, 똘똘한 놈을 골라내셨고, 모아둔 녀석보다 더 깨끗하면, 그것으로 바꾸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새 돈이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조금 구겨진 녀석을 다리미로 다려 구김을 폈습니다. 그러면 그놈도 새 옷을 입은 듯 빳빳하게 날이 섰습니다. 그렇게 깨끗한 것들로만 선별된 녀석들은 어머니 책갈피 속에 모였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꺼내어 사용되었습니다. 성당에 가서 하느님께 봉헌할 때 말이지요. 어머니가 모았던 새 돈은 당신 마음 안에 모시고 있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당신 안에는 하느님이 한가득 들어와 계셨기에, 무엇을 하든지 하느님께 대한 몫을 먼저 챙기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제 마음 안에 누군가를 담으니 제 눈과 귀가 그들을 위해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이지요. 증평에 있는 2년 동안 사목해야할 대상은 청소년이었습니다. 싫든 좋든 담당이 되고 보니 그들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아이들과 뒹굴며 놀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면서, 눈높이를 맞춰갔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제 마음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지요. 이리 되고나니 저의 관심은 제 마음 속에 들어와 있는 아이들을 위한 것에 쏠렸습니다. 신문을 봐도 아이들 관련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곳에 가게 되는 때이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공연을 알게 되면 무리를 해서라도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과연 마음에 품은 것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주렁주렁 맺어지는 열매들은 그 마음 안에 누구를 품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제 곧 설이라 했습니다. 기쁘고 풍요로워야할 명절이건만,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 드높습니다. 무한 경쟁에 지친 어린 학생들이 토해내는 한숨이며, 사교육에 허리가 휜 부모의 한숨 소리입니다. 청년 실업의 젊은이들이 토해내는 절망이며, 얇은 지갑을 들여다보는 서민들의 걱정 소리입니다. 개발 논리에 난도질 되며 파헤쳐지는 4대강이 토해내는 비명이며, 세종시 거짓 공약에 홀딱 속아 버린 충청인의 허탈한 탄식입니다. 반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감세는 상위 10%의 환호소리를 드높입니다. 대규모 토목공사와 재개발 사업의 발주도 대기업 부른 배를 더 부풀립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 안에 품고 있는 이들이 누군가를 알 것 같습니다. 이렇듯 뻔히 다 들여다 보이는데도, 아닌 척, 마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길인 양 떠드는 말잔치가 비위에 거슬립니다. 한 살 더 먹으면 좀 나아 지려나 그들을 위한 잔치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보다는. 외할머니가 주셨던 빳빳한 세뱃돈 같은, 그 마음을 한 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소외되지 않고, 똑 같은 국민으로서 그분 마음 안에 자리하는 학생, 청년, 서민의 모습을 소망하며 까치까치 설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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