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27=무심천 벚꽃
<무심천>27=무심천 벚꽃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0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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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무심천 어제와 오늘’ 시리즈에서는 해마다 4월초면 무심천 둑방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며 청주시민들에게 축제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무심천 벚꽃에 대해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올해도 무심천 둑방 벚나무에는 울긋불긋 꽃방울이 맺혀 이번 주말이면 활짝핀 벚꽃을 볼수 있을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무심천 둑방 벚나무는 일제에 의해 처음 심어졌다고 한다.

1910년대 청주읍성을 탈취한 일본군은 의병장 조헌이 이끄는 의병들에 의해 다시 청주성이 함락되자 병력을 증강하고 방어진지와 도시구획을 재정비 한다는 구실로 청주읍성을 헐어 하수구 쌓는데 사용하고 성터와 성돌을 모두 없앴다고 한다.

또 무심천 둑방을 쌓고 벚나무를 심었는데, 20여년이 넘어 아름드리로 자라 벚꽃이 피면 장관을 이뤄 청주시민은 물론 조치원, 천안, 신탄진, 부강, 증평, 충주 등지에서 무심천 벚꽃구경을 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 단체로 수학여행을 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충북선 청주역이 현재 청주시청 주변에 있었으므로 열차에서 내려 걸어서 10분이면 무심천 벚꽃을 구경할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때 무심천 둑방은 사람들만 다닐수 있는 좁은 길로 차량통행이 되지않아 산보를 하면서 벚꽃 구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한다.

무심천 벚꽃은 1950년대까지 존속이 됐으나 관리 소홀로 가지가 부러지고 해충이 침입하여 퇴락하기 시작하더니 시민들간에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일본인들이 심은 일본국화인 벚꽃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1960년대 청주시 당국이 벚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영세민 취로사업을 통해 무심천 둑방을 더 높이고 길을 넓혀 수양버드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버드나무는 봄이면 솜털같은 씨앗이 황사와 섞여 날면서 눈병괴 피부알레르기를 발병시킨다는 여론이 일어나 이번에는 시 당국이 버드나무를 잘라내고 그자리에 다시 벚나무를 심었다.

당시 무심천에 심었던 버드나무가 현재 청주기계공고 주변에 몇그루 남아 있고, 운천동 제1운천교 아래 무심천 서로변에 큰고목나무로 여러그루가 남아 있다.

이렇게 심어진 벚나무가 1980년대 들어 화려한 벚꽃을 피우자 해마다 봄이면 벚꽃구경을 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청주의 새로운 명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청주시는 벚꽃이 피는 시기에 ‘청주시민의 날’을 정하고 각종 예술문화 행사를 곁들인 축제를 열어 전국에서 청주 무심천 벚꽃을 구경하고 축제를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지금은 ‘진해 벚꽃 군항제’ 못지 않은 명물이 됐다.

김운기 편집위원(69)은 “70년대까지만 해도 무심천은 맑은 물에다 벚꽃이 화려하게 만발해 청주시민들의 천렵장소로 인기였다”고 회상하고 “무심천을 아름다운 명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김주철기자, 사진 김운기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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