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로 수출되는 새차…강남 한복판서 '이상한 거래'
중고로 수출되는 새차…강남 한복판서 '이상한 거래'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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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1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신논현역 부근 교보타워 사거리. 대리운전기사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이곳은 대리운전기사들을 실어 나르는 셔틀차량의 임시 터미널이다. 서울에서 수원, 성남, 일산 등 수도권 도시로 향하는 대부분의 대리운전기사들은 이곳에서 승합차를 기다린다.

'대리기사님이면 누구나 공짜로 100만원을 드립니다.'

일거리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대리운전기사 김모씨(51)의 눈에 현수막에 적힌 솔깃한 문구가 들어왔다. 한푼이 아쉬운 처지의 김씨는 현수막이 둘러쳐진 천막 안에 들어섰다. 천막 안에는 이미 대리운전기사 10여 명이 'J무역 김 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었다.

"저희는 중동과 동남아 등지에 중고차를 수출하는 무역회사입니다. 여러분들의 명의로 차를 사서 저희에게 넘겨주시면 1대당 15~25만원을 드려요…."

김 부장은 "명의를 빌려주면 1인당 4~6대의 새 차를 구입할 수 있다"며 "대리점에서 새 차가 출고되면 차량 구입부터 등록과 말소 작업 모두 하루 안에 처리된다"고 말했다.

차 1대를 넘겨주고 대리운전기사에게 돌아오는 몫은 현대, 기아차의 경우 15~25만원, GM대우차는 15~20만원선이다. 수출업체에 차를 넘겨주는 대가로 1인당 최대 130만원까지 챙길 수 있는 셈이다.

행여 '공돈'이 가져다줄 지 모를 불이익을 염려한 김씨가 "혹시 위법은 아니냐", "명의를 빌려주면 불이익은 없느냐"고 꼼꼼히 따져 물었지만, 직원은 "절대 걱정하지 말라"며 손사레를 쳤다.

"저희가 3주째 여기서 홍보활동을 하고 있어요. 벌써 100명 넘게 차를 구입해 주셨습니다. 개인 명의로 구매한 차를 주인이 때려 부수든, 수출을 하든 나라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인감증명서만 떼 오시면 나머지는 다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 차량 대금뿐만 아니라 등록세, 취득세 같은 세금도 다 저희가 부담해요."

직원의 설명을 듣고 난 김씨는 결국 업체에 명의를 빌려주기로 하고 수출차량인도 계약서를 작성했다.

지난 IMF 위기 때 직장을 관두고 10년 넘게 대리운전을 해왔다는 김씨는 "밤새 운전을 해봤자 차비와 식비를 제하면 4~5만원 정도 번다"며 "명의를 빌려주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쉽게 큰 돈을 준다는 유혹을 이기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꼭두새벽의 이 '이상한 거래'는 어떻게 생겨 났을까? 차량 수출 회사인 J사의 이같은 마케팅전략은 강남권 대리운전사들 사이에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있다.

J사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먼저 개인이 명의를 빌려주면 국내 자동차 대리점에 업체직원이 동행해 현금을 주고 새 차를 구입하게 한다. 업체직원은 곧바로 자동차사업소에 가서 차량 등록과 말소 절차를 진행해 새 차를 중고차로 둔갑시킨다. J업체는 이렇게 만든 '서류상의 중고차'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출업체가 개인 명의로 차를 사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업체측은 "현지 자동차 공장이 없는 중동과 동남아 국가들은 대부분 새 차보다 중고차에 붙는 관세가 더 낮다"며 "중고차는 일반적으로 배기량에 따라 확정 수입관세가 적용되는 덕분에 환율에 따라 더 큰 차익을 거둘 수도 있다"고 귀뜸했다.

편법아닌 편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세청 관계자는 "과거 렌트카 업체와 결탁해 렌트카나 리스 차량을 시세보다 싸게 구입해 해외로 수출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이 같은 수법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분명 불법성이 있긴 하지만 "개인 명의 도용으로 인한 피해만 없다면 수출용 등록말소가 끝난 차량의 통관 절차에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탈세나 명의도용으로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게는 게 사실이다.

최근 한파와 경제불황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대리운전기사들을 상대로 한 J사의 '이상한 거래'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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