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꾸미는 행복 사진첩
내가 꾸미는 행복 사진첩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1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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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강연철 <라파엘 증평성당 보좌신부>
신학교 시절에 동기 녀석이 제 어머니를 한 번 뵙더니 저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형! 형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형네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외모나 성격이나 여러 면에서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오기는 했었습니다. 자주 듣던 말이고,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 내 얼굴에 어머니의 모습이 녹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라 그 말이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작년 어머니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사무치게 그리운 날에는 동기녀석의 그 말이 떠올라 가끔 거울을 봅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에서 그리운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황망히 가시고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르신 한 분이 저를 찾아와 이런 위로의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신부님! 인간은 모두 다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느님 부르심의 그 시간이 다를 뿐이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름을 받기 전까지 그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지만, 정말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들로 시간을 채워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화를 조장해 평화를 해치며, 다른 사람의 피눈물을 쏟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알차게 채워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과 나누고, 좋은 것을 배우며,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가 평화롭고 일하게 되도록 애쓰는 사람입니다. 언제 부름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렇게 알차게 삶을 채워 가다가 부름을 받았다면,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 어머니의 삶이 그려졌습니다.

"그래, 내 어머니는 참 바쁜 일상을 사셨지.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화해 시키며, 나눠주고, 봉사하고, 희생 바치느라 참 바쁘셨지. 정말 사랑하면서 그 시간들을 채워 가셨지. 하늘나라에 가시는 그 전날까지 바쁘게 사랑하며 육신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그 시간을 채우셨지. 그러니 우리 어머니는 참 행복한 분이었구나." 이 생각을 하노라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고생만 하시다 가셨다고 속상해 하던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 나도 어차피 언젠가는 하늘의 부름을 받을 사람이지. 나도 그때가 되기 전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보다 알차게 채워보자! 행복의 사건들로 인생에 흔적을 남겨보자"

2년동안의 증평에서의 임기를 마치며 짐을 싸고 사진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짧게나마 증평에서 살아온 2년 동안의 흔적이 제가 정리하는 사진첩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봅니다. 그 사진들은 제가 기억하건 그렇지 못하건 그런 일들이 있었음을 알리는 흔적들인 것입니다. 그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당시에는 힘겹고, 어려웠지만, 기뻐 웃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있는데, 왜 나는 이런 일들을 벌여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 하며 자신을 탓하던 시절의 사진도 보게 됩니다. 그때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투덜거렸지만, 다 지나고 난 지금에서는 그 시절이 행복하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그 행복한 추억을 계획하고 실행해 나간 저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흔적은 이제 제 얼굴이 아니라 삶 속에서도 조금씩 묻어남을 느낍니다.

새롭게 경인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경인년이라는 사진첩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소수 사람들만을 위한 불행한 탐욕으로 얼룩진 사진들이 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난하고, 슬퍼하고, 위로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분배와 복지와 사회보장이라는 행복한 사진들이 빼곡히 꽂혀지길 기원합니다. 이 희망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자신의 삶부터 성실하게 좋은 것으로 채워 나가고, 또 이웃과 더 나아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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