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바라보며
눈을 바라보며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1.1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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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최현성<청주 용암동산교회 담임목사>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눈이 내렸습니다. 그냥 내린다는 표현보다는 엄청나게 쌓이는 눈입니다. 한주를 보내며 눈(雪)에 대한 이중성을 생각해 봤습니다.

눈 내리는 날 내리는 눈을 맞으며 마냥 좋아서 뒤의 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치를 감상하느라 정신이 팔렸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들뜨는 느낌입니다. 눈이 오면 어린아이와 강아지가 제일 좋아한다는데 어른들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뒤덮은 하얀 눈이 그냥 이 땅 위에 내리는 축복 같아서 말이죠.

지난주 강원도를 다녀오다가 휴게소 높은 지대에 올라서서 앞 산을 바라보니, 나무에 내려앉은 눈이 한 폭의 그림이요, 신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에서도 이런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길 위에, 지붕 위에, 뜰에, 산 위에, 들판 위에 가볍게 고요히 서로 엉켜 춤추며 내려오는 모습은 황홀함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루 사이에 전체가 묻혀 버려 아침이 되어보니 모든 것들이 온통 눈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일제히 환호성을 소리 높여 지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순수한 백설(白雪), 눈송이가 날리는 것을 보며 선한 이웃들과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온갖 더럽고 추악한 것들을 모두 덮고 있는 눈이 마치 악의 심판자 같기도 했습니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움이요, 기쁨입니다.

그러나 하루를 지내고 눈 온 뒤의 풍경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폭설로 인한 피해,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뒤엉킨 차량들, 발 묶인 사람들, 피해를 당한 농민들의 아픔, 가정도, 직장도, 학교도 온전한 곳이 없었습니다. 마치 폭격 맞아 아수라장이 된 전후를 연상케 했습니다.

거침없이 쌓이는 눈을 보며 반짝 눈에 나타났던 순수한 감상을 넘어, 함박눈이라는 순결한 표현을 넘어, 폭설이라는 아픔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고 한숨 내쉬는 아픔이 그대로 다가옵니다.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에서 표현한 대로 "그것은 신비로우며, 땅 위에 내려서도 단념하고, 땅에 어울리지 못하는 물질이다. 풍경을 덮어 버리는 그 유달리 흰 빛이 밉살스럽다"는 표현에 공감을 했습니다.

시인 김춘수는 '눈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눈은 희다고만 할 수는 없다 / 눈은 우모(羽毛)처럼 가벼운 것도 아니다.

눈은 보기보다는 무겁고 / 우리들의 영혼에 묻어 있는 / 어떤 사나이의 검은 손때처럼 / 눈은 검을 수도 있다' 그 표현에 공감을 해 봅니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아픔이요, 고통입니다.

유리창을 통해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날도 추운데 미끄러운 빙판 길을 걸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온통 빙판이 되어 있는 미끄러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많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빙판 길을 걸어갈 때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산다면, 그리고 미끄러운 길에서 중심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산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 마음자세가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지고, 가정생활도 달라지고, 사회생활도 달라집니다. 중심을 잃지 않고, 올바르고, 온전한 삶의 자세를 가질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울 것이라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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