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2.07 2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백영기 <쌍샘자연교회 담임목사>
지금은 명문학교가 된 경남의 거창고등학교는 초창기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폐교의 위기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학 부총장으로의 청빙과 함께 여러 곳에서 같이 하자는 제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쓰러져가는 농촌의 한 작은 학교를 인수하여 온 분이 있으니 바로 전영창 선생이십니다.

교장으로 취임할 당시 학생은 불과 8명에 불과했고, 학교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농·어촌 청소년들의 눈을 열고 가슴을 뜨겁게 한 교육자요 예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시골 선교사요 마지막까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다 끝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묻히신 분입니다.

원래부터 그런 여지를 가지셨지만 결정적으로 이런 선택을 갖도록 한 것은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메사추세스의 한 여자신학교를 방문할 때 나이가 좀 든 여자 선생 한 분이 그대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라'라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고 그것이 오늘의 거창고 정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잘 아는 대로 거창고등학교는 졸업생들에게 주는 졸업훈화(직업선택의 십계)가 유명합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면 틀림없으니 의심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제 정신으로는 한 가지도 어림없는 일이 아닌가요. 하지만 전영창 교장 선생은 그걸 마침내 이루었고 그런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곧 예수님의 정신이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좁은 문으로 가라. 생명과 구원의 길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넓은 문이 아니다.' 하신 것처럼 주님의 삶은 실로 그러하셨습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대림절입니다. 예수가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때이지요. '강아지 똥'과 '몽실 언니'로 잘 알려진 권정생 선생님 또한 이런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여 그런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쪽방 한 칸에 몸이 부서지는 아픔을 겪어 내시면서도 그 흔한 진통제 하나 사먹지 않으시고, 인세로 받은 적지 않은 돈을 모두 북한의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지금은 대림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낮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기꺼이 당신이 맡으셨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사람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리고 생명과 평화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 아닐까요. 소금과 빛이 절실히 요청되는 지금, 이런 마음과 자세로 사는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