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종교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18 2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멀리 있는 친구 수녀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부활인사 전화였다.

내 귀에 들려오는 첫 마디는 “높은 자리에 있는 분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는 말이었다.

몇 차례 전화를 했지만 통화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친구 수녀님에 의하면 쉽게 전화할 수 없는 자리는 높은 자리라고 했다.

‘낮은 자의 목소리’라는 지면을 채우는 사람으로서 오늘은 나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느 성당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한 어린이가 물었다.

“신부님은 왜 치마를 입었어요?”가톨릭 교회에서는 성직자들이 수단이라고 하는 긴 치마를 입는다.

수단 입은 모습을 보고 묻는 질문이었다.

아마도 신부는 남자인데 남자가 치마를 입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당한 질문이라 대충 얼버무리면서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아직도 말하지 못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치마 입은 남자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치마는 여자들의 옷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치마를 입는다는 것은 사회의 일반적인 사고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것도 짧은 치마가 아닌 긴 치마를 입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해괴한 일이다.

짧은 치마가 유행인 세상에 긴 치마를 입는 것, 이것은 분명 거꾸로 사는 모습이다.

이렇게 볼 때 신부(남자)가 치마를 입는 것, 그것도 긴 치마를 입는 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높은 곳으로만 향하는 세상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부의 삶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높이 올라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세상은 높이 올라가는 것을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오르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이다.

우리 주위에도 보면 한없이 높이 올라가는 건물, 높은 자리에 올라서려는 사람들, 온통 높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교회는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삶은 낮은 곳에서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부는 사람들에게 그 삶을 가르쳐 주고 그 삶을 몸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 다음에 그 어린이를 만나면 신부가 치마를 입는 것, 그것도 긴 치마를 입는 것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는 의미라고 말해주어야 하겠다.

아울러 긴 치마(수단)를 입을 때마다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도록 노력해야겠다.

낮은 곳은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이고, 교회의 사람인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 것이다.

그 때 이 지면을 통해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참으로 ‘낮은 자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