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53>
궁보무사 <5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0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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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근장의 분노

그러나 이렇게까지 전쟁 준비를 마치고난 마당에 갑자기 그만둔다는 것은 팔결성주 오근장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체 어느 성(城)에서 그런다든?”오근장이 몹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들 오동동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어느 성(城)이라고 꼭 집어서 말씀 드릴 필요도 없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성들이 그런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옥성(玉城)을 비롯해서 세교성, 비중성, 우산성, 그리고 저 멀리 상산성과 이월성 등등…….”아들 오동동이 대답했다.

“그, 그럼.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성(城)의 성주들이 똑같이 그런 흑심을 품고 있었단 말이더냐?”“일단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벌성을 치러나가는 즉시 우리 팔결성은 아무나 와서 뜯어먹는 푹 삶은 살찐 돼지 꼴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아 아니……. 그, 그럴 수가…….”오근장은 도무지 아들 오동동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을 수 없다기 보다는 그 자신 스스로가 이런 사실을 믿고 싶지가 않았다.

미호강물을 굽이굽이 낀 채 넓게 펼쳐진 오창평야에 황금물결이 출렁거리는 추수 때가 되면 매년 어김없이 환히 웃는 낯으로 팔결성에 찾아와 다만 얼마의 양곡이라도 더 사가거나 얻어가고자 오근장 성주에게 그렇게 아부를 해대던 그들이 아닌가.특히 옥성(玉城) 성주 취라(吹羅)의 경우 팔결성주 오근장과 나이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취미 생활이 서로 같기에 이제까지 십수년째 호형호제(呼兄呼弟) 해가며 서로 친하게 지내오고 있는 사이였다.

물론 여기서 그들의 취미생활이란 미녀를 데리고 즐겁게 노는 것을 말하는 건데, 어쨌든 옥성 성주 취라(吹羅)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팔결성주 오근장의 이번 한벌성 공격 계획을 적극 지지하고 또 지원해 주었었다.

각종 무기들은 물론 심지어 자신이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까지도 전쟁할 때 혹시 도움이 된다면 쓰라며 일부러 보내주기까지 하였으니, 오근장이 그의 참된 우정을 어찌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옥성 성주 취라(吹羅)는 이에 앞서 한벌성주를 찾아가 ‘한벌성의 많은 인구와 넓고 기름진 오창 평야가 함께 곁들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웬만하면 이번 기회에 저 싸가지없는 팔결성을 완전히 복속시켜버려서 한벌성주님의 위엄을 천하에 알림과 동시에 정식으로 나라를 세우도록 하십시오. 미력이나마 제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은근히 서로의 싸움을 부추켰더란다.

 오근장은 그 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몇몇 제보자들을 다시 불러다가 직접 조사해 보았지만 역시 아들이 말한 바와 똑 같은 결론을 얻었을 뿐이었다.

‘으으음……. 더럽고 비겁하고 치사한 놈들. 천하에 배은망덕한 놈들. 하마터라면 내가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을 뻔 했잖아.’팔결성주 오근장은 다시 한 번 그들의 더러운 흑심을 생각해 보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까지 비비 꼬여진 이상 오근장은 한벌성 공격 계획을 일단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근장 성주는 한벌성에 들어갔다가 개처럼 질질 끌려다니며 얻어맞고 돌아와 아직 그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장수 두릉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두릉의 의견이란, 날랜 팔결성 병사들을 뽑아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힌 후 한벌성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변두리 마을들을 도둑떼들인 것처럼 가장하여 약탈을 자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벌성 내에 첩자를 몰래 침투시켜 귀중한 정보를 빼오기도 하고 부용아씨에 대해 듣기에도 거북한 입소문 따위들을 은근히 퍼뜨려놓기도 했다.

이를테면 부용아씨는 몸뚱이가 작아서 그렇지 하룻밤사이에 열 남자고 스무 남자고 닥치는 대로 자기 배 위에 오르내리게 하더라도 끄떡없을 정도로 색이 무척 강하고 센 여자라든가,몰래 서방질하다 들켜가지고 팔결성에서 이곳 한벌성으로 오게 될 때 오근장의 씨를 말려버린다며 자기가 낳은 어린 아들을 맨 땅바닥에 집어던져 반쯤 죽게 만들어놓았다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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