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한 단상
외로움에 대한 단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1.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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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길두 <청주교구 교정사목 신부>
겨울이 뼛속까지 들어차는 시간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 인간을 가르치는 스승역할을 해 왔지만 이렇게 바람이 차고 손끝이 시린 계절에는 더욱더 자기의 안쪽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찬 바람 가운데 서 있으면 이상하게 생에 대한 의지가 솟구칩니다.

제가 머무는 방에서 바라보면 감나무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입니다. 어느 덧 계절을 타서인지 나뭇잎과 열매 다 떨구고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모습은 자식 다 출가시키고 쓸쓸히 혼자된 노구의 모습으로 외로워 보입니다.

겨울이 되면 우리는 가을과는 또 다른 외로움을 느낍니다. 가을의 외로움이 감상적인 것이라면 겨울의 외로움은 의연함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결혼도 외로우니까 하는 것이지요.

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제도가 있고, 법이 있고, 문화라는 것이 있는가? 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이 모두가 외로움과 연관이 되는 듯합니다. 외로우니까 법을 만들고, 끼리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돈을 벌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외로움 때문입니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하고 주변에 모여들게 마련이지요. 또한 돈이 많으면 이것저것 자기 주변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커집니다. 호화로운 집에 살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 마음 한 구석의 텅 빈 허전함이 채워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지요. 식구들이 몸을 누일 몇 평의 공간만 있으면 족할 것 같지만 막상 내 집 장만을 하여 살다보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열세 평에서 열여덟 평으로, 서른 평으로, 마흔 평으로 자꾸 욕심이 커집니다. 그렇게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생애를 다 보내고 말지요

이 모든 것이 다 외로움 때문입니다. 외로움 때문에 돈도 벌어야 하고, 사람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이것 저것 취미를 바꾸기도 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는 것도 외로움 때문입니다. 자기를 학대하는 것이나 남을 학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는 증세도 모두 외로움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외로움 때문입니다.

외로움 때문에 생겨난 이런저런 욕망이 절반 정도만 채워지면 그럭저럭 삶을 꾸려 가는데 그 이하가 되면 만족을 모르게 되고 이것이 병으로 나타납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못 찾겠다고 하는데 늘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된다는 말을 달고 살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모두 외로움 때문입니다. 사랑 결핍증 때문입니다. 외로움이란 벗어나려 한다고 해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굶주림을 미워한다고 해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목마른 자에게는 연인이 되어 줄 남자나 여자가 필요한 것이지 사랑에 관한 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요. 내 안의 외로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외로움을 미워하는 태도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천에 널려 있는 외로움을 느끼려 가까운 산에 올랐습니다. 외로움이 많은 산 속에서 내 모습이 아주 뚜렷이 잘 보였고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오히려 도시 속에서 이 몸이 쓸데없음을 보게 되며 도시에서 나는 없고 사람들의 모습만 보입니다.

도시의 번잡함 속에 나는 없었습니다. 나무는 꽃을 고집하지 않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잎새를 다 떨구어야 겨울을 납니다. 꽃을 떨군다고, 잎새를 떨어뜨린다고 외롭다 하지 않습니다. 다음 해가 있기에, 희망이 있기에 절망적인 상황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외로워 보여도 사실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치열함이 숨어 있습니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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