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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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4.2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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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쯤이면 지리산 기슭을 따라 흐르는 섬진강을 타고 올라온 봄의 여신은 지리산 자락에 연녹빛 물감을 뿌리며 다니고 있을 것이고, 그러한 지리산은 꽃보다도 아름다운 연녹빛 신록으로 덮여가고 있을 것이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의 다른 산들과는 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개 우리나라의 명산들은 설악산이나 금강산이 그렇듯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남성의 기개가 엿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리산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다 아우를 만큼 다산을 한 여자의 풍만한 엉덩이처럼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푸근한 모성애의 느낌을 주는 산이다.

그래서인지 지리산은 온갖 약초를 포함한 다양한 식물을 품고 있으며, 여러 종의 산짐승들이 넉넉하게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산청 출신의 명의 허준도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기에 위대한 명의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만큼 지리산은 풍요로운 산이다.

또 다른 점은 다른 산들은 산신이 거의 다 남성인데 반해 지리산은 유일하게 여성이 산신이라는 것이다.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天王峰)이 그 증거로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지리산 속의 한 절에 법우화상이라는 스님이 어느 날 산골짜기에서 비가 오지 않는데도 물이 자꾸 불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물줄기를 따라 천왕봉 정수리까지 올라가니 거기에는 엄청나게 키가 큰 한 여인이 앞을 가로 막고 말을 하였다.

“나는 성모천와(聖母天王)이오. 내가 당신을 꾀기 위해서 수술(水術)을 부렸다오. 당신과 만나는 것이 나의 인연이니 부부가 되어주시오.”그리하여 이들은 그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며 딸 8자매를 낳았다.

딸들은 모두가 황금요령을 흔들고 채선으로 춤을 추면서 산을 내려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무당이 되었다 한다.

해서 무당들은 지리산 산신인 성모천왕과 법우도사를 그녀들의 조종(祖宗)으로 부른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토착샤머니즘과 불교와의 결합을 상징하는 타당성을 보여주는 얘기로 어느 산보다도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하나는 지리산이 우리 민족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산이라는 점이다.

한국전쟁의 최후 종전이 빨치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이 산에서 막을내렸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상처의 부위를 건드리면 빨간 피가 주루루 흘러내릴 것 같은 상흔의 흔적이 이 골짜기 저 능선에 피어나는 철쭉꽃과 함께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한반도의 한 가운데 널찍하게 자리 잡고서 우리 민족과 같이 숨을 쉬어 온 산. 많은 문학작품과 종교와 많은 전설을 품은 산.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오늘도 지리산을 오른다.

산청에서도 오르고 남원에서도 오르고, 구례에서도 화계에서도 지리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오르는 길은 달라도 결국은 천왕봉 정상에서 만나면 지향 점의 종착지에선 하나됨을 알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의 등산로를 따라 지리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아마도 문학과 음악과 미술도 지리산의 각기 다른 골짜기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정상을 향하는 것처럼 표현의 수단과 방법이 다를 뿐이지 결국 각각의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정점에선 하나됨을 알게 된다.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성악뿐만 아니라 미술도 아주 잘하여 이름을 얻은 것이나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국민시인이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도 시인인 동시에 철학자, 교육자이며 극작가이고, 음악가이자 화가로 평생을 활동한 것이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문학과 음악, 미술은 표현의 방법에 있어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사람이 음악과 미술을 이해하고 체험하여 능하게 되면 그의 문학은 많은 것을 품고 있는 풍성하고 폭넓은 지리산처럼 넉넉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 넉넉함 속에서 느끼고 쉬며 정신적인 집을 짓고 싶어 모여 들게 될 것이다.

결국 예술의 정점이란 문학과 음악 그리고 미술이 지향하는 꼭지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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