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홍엽
만산홍엽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10.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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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법안 주지스님 <논산 안심정사>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뜨락의 갖가지 빛깔의 국화가 한층 아름답게 빛을 더한다. 세월이 화살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다는 비유는 이제는 총알보다 빠르고,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와 같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가을 들판의 황금빛 너울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은 쌀값의 폭락이라는 문제로 모두가 시름을 앓고 있지만 말이다.


봄인가 싶더니 늦가을의 문턱에 와 있다. 느티나무 낙엽이 찬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이내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려서 산사의 아침은 나뭇잎을 쓸고 태우는 향기로 시작된다.


지난 수요일 교도소 법회가 있었다. 벌써 20년을 드나들었으니 이제 귀밑머리가 흰 터럭이 늘어간다. 지난해 12월 한 수용자가 소내에서 자살하였단다. 사는 게 힘들었고, 담당하는 교도관에게 부탁하여 자매결연해 월 1만원씩 영치금을 받게 해달라고 했었단다. 그래서 새로 자매결연의 인연을 맺고 만남을 기다리던 중이었단다. 봄을 기다리는 동안이 너무 길었는지, 나이는 이제 60줄이 가까워지고 바깥세상에 나갈 시간은 아직도 10년 가까이 남았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희망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했나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고통바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살기가 쉽지 않음을 표현하는 말씀일 것이다. 우리가 이 험난한 고통바다를 살려면 보통 희망을 가져선 안 된다. 세상 살면서 죽고 싶은 때가 어찌 한두 번뿐이겠는가? 모든 사람이 사는 게 거의 차이가 없지 아니한가?


지나가고 나면 삶 자체도 덧없는 것이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어찌 나만의 감상이겠는가마는 그래서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고, 고통을 견딜 만한 것은 아닐까?
희망은 어느 곳 어느 때에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희망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반드시 있다. 다시 한 번 일어서서 힘차게, 비록 서툴러 비틀거리면서 시작했더라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날이 머지않으니 말이다.


늦가을 비가 내린다.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않은 법인데, 그 자살한 친구에게는 봄이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자살하면 안 되는 것인데도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해버린 것이다.  
"그래, 그래도 우린 희망을 갖자. 절대로 자살하지 말자."


올해 교도소 첫 법회 첫 법문의 내용이었다. 희망! 때론 그 희망이 나를 속인다하더라도, 나는 희망이 좋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아름답게 온산을 물들여놓은 단풍이 그냥 단풍이 아니지 않은가. 추운 겨울을 살아남고, 봄부터 싹을 티우고 무더위와 온갖 풍상을 겪은 후에야 아름답고 고운 빛깔의 단풍이 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더욱 아름답지 아니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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