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무난(至道無難)
지도무난(至道無難)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9.2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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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법안 <논산 안심정사 주지스님>
고온 건조한 날씨에 가을비가 내리니 쌀쌀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법당 앞의 노란 국화꽃은 그 자태를 뽐내며 아름다움과 향기를 힘껏 자랑한다. 자연은 어김없이 순환하고 있음이다.

승찬이란 이름의 중국 스님이 있었다. 혹자는 나병환자라 하고 혹자는 중풍 든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쨌든 그 병으로 인해 죽을 고생을 하다가 훗날 스승으로 모시게 된 혜가(慧可)라는 스님을 찾아간다.

"제가 괴로워 죽겠습니다.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생에서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혜가 스님에게 자신의 죄를 좀 없애달라고 말한다. 느닷없이 찾아와 불쑥 던진 승찬의 이 절박한 물음에 혜가 스님은 "그렇다면, 네 죄를 나에게 보여다오. 그러면 그것을 없애주지." 했더니, 승찬 스님이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러자 혜가 스님이 "그래 그렇다면 그게 없어졌나 보군. 이젠 됐나"라고 하시는데, 이 한마디 말에 승찬 스님은 문득 깨쳐 버린다.

그 승찬이라는 스님의 저술 가운데 '신심명(信心銘)'이란 책이 있다. 그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이 지도무난이다. 전통적으로는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라고 해석한다. 도에 무슨 지극한 도와 안 지극한 도가 있겠는가마는 하여간 가장 어렵다는 도에 이르는 것도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 하나의 해석은 '도(道)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도(道)란 여러 가지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씀이다. 길 즉 Way라는 의미도 있고, 이치(理致) 즉 reason 또는 원칙 principle 또는 법칙 law 등 다양하다. 이 신심명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도도 여러 가지 의미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겠지만, 또 따른 의미가 있음직하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불가에서는 화신불(化身佛)을 이루기가 어렵지 않다는 의미인데 그 의미는 여기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살면서 사는 방법 내지는 원칙이 바로 도(道)요, 세상을 세상답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이 도이다. 공자님의 논어 안연편에는 제나라 경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하고 물었다. 이에 공자께서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라는 뜻이다. 그것이 넓게 펼쳐지면 직장, 집안, 세상살이에서도 각자의 이름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자신이 자신답게 사는 것, 즉 인간답게 사는 것을 포함하여 세상이 세상답게 돌아가는 것도 바로 이 도의 이치이다.

그러나 그 '답게'라는 말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래서 중국의 많은 선적(禪籍) 가운데서도 백미로 꼽힐 만한 글에서도 도에 이르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음이다. 어려워서 접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을 내어서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삶이요, 그 삶 자체가 쉽게 바뀌지 않은 까닭은 아닐까

이제 가을이 깊어간다. 잠시 후에는 만산홍엽을 이룰 것이다. 코스모스가 아름답고 국화가 아름다운가 했더니 이내 흰서리 내리고 흰눈 쌓일 날이 머지않았음이니 말이다. 인생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느새 귀밑머리에 흰 터럭이 늘어나니 말이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이 싸늘한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뒹굴 것이다. 할 일을 마치고 바람에 실려 미련 없이 떠나는 단풍. 그러나 나무는 한켜 더 굵어지고, 그 나뭇잎의 덕분으로 자란 씨앗 또한 더욱 풍성할 것이다.

그래서 곱게 늙어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씀한 선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에는 환갑에 약간 철들고, 죽을 때에야 철이 든다고들 한다. 그 철든다는 말씀이 바로 도에 이르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바로 지극한 도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말씀은 아닐까 그러나 철들어가기가 또한 더욱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철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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