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날씨<19>
신화속의 날씨<1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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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날씨신은 가뭄신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단군 이래 대한민국 국민을 가장 유쾌하게 통합하는 쾌거였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붉은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연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로울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대표 응원단이었던 붉은악마가 사용했던 상징문양이 ‘치우천황’이었다.

상암경기장 스탠드에 펼쳐져 있던 치우의 붉은 초상화는 월드컵 우승의 확신이 솟아날 정도로 강렬하고 압도적이었다.

중국의 역사서 ‘예기’와 ‘여씨춘추’에 의하면 하늘에 다섯 명의 임금이 있었다.

봄을 다스리는 임금은 복희(伏羲), 여름을 다스리는 임금은 염제(炎帝), 가을은 소호(少昊), 겨울은 전욱이며, 중앙을 다스리는 임금이 황제(黃帝)였다.

치우(蚩尤)는 여름을 다스리는 염제의 아들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치우는 동두철액(銅頭鐵額), 즉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있으며, 모래와 쇳가루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

‘삼성기’에 의하면 14세 치우천왕은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방의 군신(軍神)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의 무덤에서 치우의 깃발이라고 불리는 연기가 날리면 세상에 난리가 난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도 전쟁터에 나가기 전 반드시 치우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치우를 모시는 사당이 여러 곳 있을 정도로 치우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추앙받는 군신(軍神)이었다.

중국 신화에서 날씨를 이용해 벌인 최초의 전쟁이 치우와 황제의 전쟁이다.

여름을 다스리는 임금 염제가 황제에게 도전했다 패하여 죽자 아들 치우가 벌인 복수전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가 황제와의 싸움에서 패하자 치우는 복수를 다짐하며 남방의 묘족과 황제에게 반감을 가진 신(神)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치우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황제는 피 흘리는 싸움을 피하고 설득하려 했으나, 복수심에 불타있던 치우는 듣지 않았다.

복수심 외에도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양측의 군대가 들판에서 맞붙었을 때, 갑자기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황제의 군대를 첩첩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안개작전은 염초라는 풀을 태워 나오는 연기로 사방을 뿌옇게 만드는 치우만의 비책이었다.

지척을 분간하기 힘든 안갯속에서 치우의 군대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얼이 빠져 있는 황제의 군대를 수숫단 베듯 쉽게 베어 나갔다.

황제는 부하들이 마련해준 지남거(指南車)를 타고 간신히 도망을 쳤다.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컸지만 날씨에는 날씨로 대응해야 한다는 신하들의 간언에 따라 황제는 비를 내리게 하는 신룡(神龍)을 불러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신룡이 구름을모아 비를 내리려는 순간, 치우는 바람과 비를 불러 신룡보다 더 큰 비바람을 만들어 냈다.

치우란 ‘우레와 비를 크게 만들어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이라고 한다.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황제군을 때려 치는 벼락은 실로 위력적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비바람까지 진중으로 몰아치자 황제의 군대는 또다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중앙의 권력을 치우에게 넘겨주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때 한 신하가 나서 치우를 이길 수 있는 비책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맑으면 비를 내릴 수도 천둥번개를 칠 수도 없으니, 비와 번개를 이길 수 있는 날씨는 맑은 하늘 밖에 없다.

따라서 맑고 무더운 날씨로 가뭄을 관장하는 황제의 딸을 전장에 내보내자’고 했다.

신하의 말을 그럴 듯하게 여긴 황제는 마지막 방법으로 딸 한발(旱魃:가뭄)을 전쟁터에 내보냈다.

그녀가 선두에 서자 거칠게 몰아치던 비바람과 천둥이 그치고 태양이 이글거리고 땅에는 가뭄이 들기 시작했다.

여세를 몰아 황제군은 치우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서로 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전쟁이 점차 장기전으로 바뀌어 가자 절치부심하던 황제는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빛을 발하면서 폭풍우와 함께 천둥소리를 내는 ‘기’라는 동물을 잡아 그 껍질로 북을 만들고 뇌신(雷神)의 뼈로 북채를 만들었다.

북을 두드리면 우렛소리가 500리 밖까지 들렸다.

황제가 북을 일곱 번 두드리자 천지가 진동했다.

북소리를 들은 치우의 군대는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총 공격을 가해 치우군을 절반이나 몰살시키는 전과를 얻었다.

치우가 군대를 재정비한다는 보고를 받은 황제는 기나긴 전쟁을 끝내는 최후의 일격을 결심하고 하늘에서 보내준 신기한 보검을 뽑아들었다.

보검은 수정처럼 투명한 차가운 빛을 사방으로 내뿜었으며, 빛에 닿는 어떠한 물체든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

보검을 들고 선두에 서서 진격하는 황제의 군대 앞에 치우의 군사들은 쉽게 베어져 흩어지고 말았다.

대패한 치우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갔다.

역사상 기록된 기상재앙 중에서 인류에게 가장 심각하게 피해를 준 기상현상은 단연 가뭄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비틀고 말려버리는 특성 때문이다.

치우천황 신화에서도 보듯이 비바람과 천둥 번개의 기세를 단숨에 꺾어버린 기상현상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가뭄이었다.

황제의 딸 한발과 수정 보검에 패해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했던 치우천황은 우리나라 월드컵 4강의 ‘대∼한민국’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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