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짐과 일어남의 사이에서 머문 시간
넘어짐과 일어남의 사이에서 머문 시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8.3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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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길두<청주교구 교정사목>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함은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 몸과 살을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결핍되게 하며, 행함에 그 하는 바를 어지럽게 하니, 이는 마음을 분발시키고, 그 성질을 참게 하여, 그 능하지 못한 바를 보태주려 함이다." 청나라 위상추라는 분이 '용언'집에서 한 말이다.

가끔 사목을 하면서 일과 사람 때문에 지치고, 마음에 상처가 나고, 몸이 소진 될 때 윗글을 보고 위안을 삼는다.

전 본당에 있을 때의 일이다. 성당 생일날 잔치 끝에 미니축구를 하다가 넘어졌다. 갑자기 허리 밑이 없는 느낌, 스스로 주저 앉았다. 딱 소리와 함께 무릎 인대가 끊어진 것 같았다. 가까스로 일어나서 사제관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사제생활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아픈 것보다도 이제 좀 쉬라는 말씀인가 이렇게 한 방에 무너지다니!" 밤새 ??앓았다. MRI를 찍었더니 인대가 끊어졌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허무하기가 그지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 핑계를 대고 수술이며 모든 의료행위를 거부했다.

성당에 돌아와서, 기도중에 "왜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하느님께 원망을 했다. 또 다리를 못쓰게 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미덥지 못한 마음을 자책했다.

사실 내가 한 방에 넘어질 줄 몰랐다. 머리, 가슴형이 아니다 보니까 몸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신부가 되어서 낮잠을 자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충실했다.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 외에도 가야금, 마술 등 삶의 주변을 풍요롭게 했다. 배운 무술 도합하면 8단이다. 태권도, 검도, 전통무술, 우슈 두루두루 자신만만했다. 뱃심 또한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 나였다. 사실 내가 하는 모든 사목활동이 뛰어나거나 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모든 사목 열정, 강론, 주일학교 아이들에 대한 관심, 노인분들에 대한 배려. 1등은 아니더라도 2,3등은 되지 않겠느냐는 자만심이 있었다.

의사는 목발이라도 하고 미사를 하라고 하는데 아픈 다리로 제단에 올라섰다. 목발을 하고 미사 하는 것이 내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다. 목발은 창고에 갔다 치웠다.

평소에는 무심코 하늘하늘 걸어 올라간 제단이었는데.

어느 날 이른 새벽 성체 앞에 그것도 성당 바닥에 쐴?려 있으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제대 계단이 보였다.

"하느님 저 계단을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도구입니다. 연장이 무디고 고장이 나면 갈아서라도, 고쳐서라도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주인의 마음 아닙니까 행여 나의 부족함이 있었다면 나의 죄를 보지 마시고 당신의 자비로 일으켜 세워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하느님을 위해 한 것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묵상하게 되었다.

"나는 하느님의 도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느님을 도구로 사용했구나!"

"내가 하느님을 절름발이로 만들었구나!"

"도구는 도구로서의 일이 그의 몫이구나. 주인은 주인의 의지만이 그의 몫이구나!"

"도끼날과 도끼자루를 쥐는 손은 그 자리가 다르구나!"

무디면 갈아주고 너무 날이 서면 부러질라 무디게도 하는 것이 주인의 뜻임을 쐴?려 예! 하게 됨을 깨달았다.

나에게 머리와 가슴과 뱃심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나는 뱃심을 택한다. 두 번째로 가슴을 그리고 머리를 택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뱃심이 두둑한 사람들이다. 그 뱃심에 겸손을 더하고, 믿음으로 행할 때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이뤄 내신다.

하느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함은 몸과 마음과 뜻과 행함을 어지럽게 하여 마음을 분발시키고, 그 성질을 참게 하여 그 능하지 못한 바를 보태주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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