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늙은이가 들려주는 우화 하나
정신 나간 늙은이가 들려주는 우화 하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2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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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태종 <청주 삶터교회 담임목사>
   커다란 나무가 하나 있었다우. 키는 마치 하늘에 닿을 것처럼 대단하고, 둥치의 굵기는 자로 잴 수 없을 만큼 실했으며, 가지 또한 우아하게 균형잡혀 뻗어 있는데 잎은 큼지막하고 잎살도 두꺼워 온갖 짐승들의 먹이가 되기도 했고 말이지요.

나무의 크기가 그러하니 그 나무를 두고 벌어진 일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으며, 그 가운데는 바람직한 일도 많았고, 그렇지 않은 일도 적지 않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평을 받으며 여전히 오늘도 그렇게 꿋꿋하게 서 있더란 말이지요.

아주 옛날부터 이 나무에는 나무를 못살게 굴면서 자라는 해충이 생기곤 했는데, 나무가 그래도 건강했던 건 나무에 와서 깃들이고 둥지 틀면서 자라는 새들이나 다른 벌레들이 그 해충을 잡아먹어 그것들이 나무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우. 그런데 최근에 문제가 생겼는데 그건 이 해충들이 유난히 극성을 부리면서 번성했고, 그것들이 한 종류가 아닌 여러 종류로 불어났다는 사실, 더군다나 이것들이 힘을 모아 그런 해충을 잡아먹어 생명의 균형을 잡아주던 다른 곤충이나 새들을 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거라우. 기세는 나무를 고사시킬 정도로 엄청난 데다가 나무에 와서 살려는 좋은 곤충이나 새들이 자리잡을 터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없앤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인데 그에 대항할 적절한 힘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없으니 이게 이만저만 위험한 노릇이 아니라 그 말이지요.

어이가 없는 것은 다른 새들이나 곤충들이 오면 그것들이 나무를 위협할 못된 것들이라고 하면서 저희끼리 똘똘 뭉쳐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대고, 자기들만이 나무에 살면서 이 나무를 지켜주는 좋은 생명체라고 우겨대는 바로 그건데, 그 목소리는 크고 다른 움직임이나 목소리는 거기 묻혀서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어쩌다 소리를 내도 그런 것들은 모두 불온한 거라고 몰아세우는 논리가 먹혀들어가는 듯 보이니 이만저만 한심한 노릇이 아니더란 말이지요.

그 돼먹잖은 벌레들이 아무리 극성스러워도 다른 곤충이나 새들이 와서 깃들일 자리만 생기면 벌레들도 살고 나무도 살고 새와 곤충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만큼 충분히 크고 실한 나무지만 지금은 상황이 아주 절망적으로만 보인다우. 아무도 이것들을 막을 힘이 없을 것 같은, 기세가 대단하고 사나운 데다가 교활하기까지 한 저 벌레들이 마침내는 나무를 다 갉아먹어 나무도 죽이고, 나무와 더불어 살던 다른 생명들도 떠나고, 그리고 나무가 서 있던 자리가 황폐해 질 거라는 걱정스러운 관측들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답니다.

이 벌레들이 하는 짓을 가만히 보니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히틀러 정권의 유대인 학살이 떠오르기도 하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나 우리 역사의 보도연맹 학살사건과도 일면 닮기도 하고 연관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무는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누군가 정원지기라도 와서 이걸 정리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정원지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래서 딱하기가 이를 데 없더라니까요.

물론 이건 기형적으로 태어난 벌레들이 더는 갈 곳이 없어 다 한곳에 와서 뭉쳐서 하는 마지막 몸짓이고, 그렇다고 세상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건 아닌지 싶은 건데, 에휴, 지금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가서 술이나 한잔 걸판지게 마시고 해 지기 전에 잠들어야지. 이제 그만 할라우. 다들 잘들 계슈.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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