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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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백영기<쌍샘자연교회담임목사>
   선생님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는 제자 지망생에게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8)고 대답하십니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요 단순히, 나는 집 한 칸 없는 거리의 노숙자 신세인데, 내가 그런 사람이라도 좋거든 따라오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걸까요 그런 뜻이었다면 좀 비참한 이야기로 끝나고 말겠지요. 세상에 노숙자가 모자라서 멀쩡한 집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어 나와 함께 노숙을 하자고 초대하는, 예수님이 그런 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선생님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했을 때 그에게 대답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디든지'따라가겠다는 사람에게, 나한테는 정해두고 가야 할 '어디가'따로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를테면 정처(定處)가 없다는 말입니다.

한때 혈기왕성하고 은혜가 충만하다고 생각했을 때, 주님이 부르시고 쓰시겠다면 '어디든'가겠습니다. 한 사람이 어디 저뿐일까요, 교회를 다니고 있는, 또는 예수를 믿고 사는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다 주를 버린다고 해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했지만 불과 얼마가지 않아 그 말이 책임질 수 없는 것임을 뼈저리게 맛보아야 했던 우리들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면, 가신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그리 쉽게 말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말이겠지요. 예수님이 가신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를 제대로 몰랐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목회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지고 그 지망생들 또한 차고 넘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외형적으로는 분명 부흥과 성장이라는 축하할 만한 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리 순수하지 못하고 헌신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적으로 아무런 보장과 대가도 없는 그 길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히 자신을 내드리는 것이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면 그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종이 되고 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은 괜찮은 직업(?)이라는 인식과 평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커져가는 교회와 대접받는 목회자, 거기다가 부유한 생활까지 본 것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사람이었고 더 나가 생명이었습니다. 잘나고 못난 사람이 따로 없는 똑같은 사람으로 만나신 것은 생명을 보는 눈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소중하게 대하신 것입니다. 사람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셨기에 다른 모든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다 부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거 없이 그저 예수님의 마음과 말씀이 좋고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일이 좋아서 오는 사람들, 비록 예수님처럼 제 집 하나 없는 인생이 된다 할지라도 기쁘게 그 길을 가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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