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연가(戀歌)
교도소 연가(戀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6.2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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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길두신부<청주교구교정사목>
   교정사목을 한 지 이제 6년째가 되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죄가 점점 더 커져간다. 시간이 길수록 더 고수(형이 긴 수인)가 되기 때문이다. 6년 동안 나는 수인이었다. 그래서 교도소는 나에게 이승의 연옥(煉獄)과도 같다. 교도소에 들어갈 때 내가 밖에서 지은 죄를 철창 안에 가두고, 교도소에서 나올 때 나는 잠시의 자유를 느껴본다. 내가 바깥에서 지은 죄를 보속하는 장소요. 나 자신의 나태함과 지루함이 사치로 여겨지고, 가당치 않게 생각하게 되고, 배부른 고민을 한꺼번에 날려 보내는 곳이 교도소이다.

그래서 교도소 사목을 하는 나에게 교도소는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한다. 교도소에 가고, 수인들을 보면 긴장이 사라지고 욕심을 버리게 되고 무언가를 주고 싶어진다. 그간 세상사에 찌들어 다툼과 갈등 속에 살았던 모든 짐을 내려놓고 무장해제 하게 된다. 이들과의 대화는 불필요한 싸움을 포기하게 되고, 뭔가 악한 감정을 갖고 있다가도 그것이 부끄럽게 여겨지고, 내안의 미움을 봄눈 녹듯 녹여버리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비록 권태로움을 잊기 위해서 천주교 집회에 온 경우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스스로 미사에 나온 것도 아니고, 빵 때문에 나왔다 하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도 아니고, 성체를 받아 모실 줄도 모르지만 이들은 분명 나에게 훌륭한 신자들이요, 위대한 스승이다. 이들은 단순함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부님! 제가 깨달은 건데요."

"행복에서 불행으로 가는 데는 한순간밖에 필요하지 않지만,

불행에서 행복으로 가는 데는 영원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더라고요."

"오늘 죽고 싶은데 내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지옥이고요.

오늘 죽을 것 같은데 내일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이것도 지옥이더라고요."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부님!"

"너에게 천국은 없다. 너에게 부활은 없어.", "왜 그럴까?", "너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제대로 한번 죽어봐야지!", "죽어야 부활이 오지", "참 쉽지.", "쉬운 게 그렇게 어려운 법이다.", "나는 죽는 게 쉬울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사람이 부럽거든. 네가 내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봐라."

"신부님! 어떻게 하면 제가 여기서 지은 죄를 보속하고, 보다 나은 갱생의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삶은 지금이다. 현재로 들어와야지."

하지만 "저는 지금 현재에 있지 않습니까"

"아니다."

"왜 아닙니까"

"너는 과거를 떨쳐 버리지 않았잖아."

"왜 과거를 떨쳐 버려야 됩니까?", "제 과거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과거를 떨쳐 버려야 하는 까닭은 나쁜 것이라서가 아니라 죽은 것이기 때문이거든!"

이들의 모습에서 꺼구로 된 세상을 보게 된다. 영화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면 주는 것은 받는 것이 되고, 뺏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된다. 꽃이 지는 것은 꽃이 피는 것이 되고, 구름이 모이는 것은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 된다. 거꾸로 돌리면 우리들의 생각은 미움이 사랑이 되고, 싸움은 우정이 되고, 괴로움은 즐거움이 된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이 되고,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중심이 아니면 하느님이 중심이 되는 것이고, 기도는 감사가 되고, 희생은 보속이 되며, 자선은 은총이 되는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법을 갖고서 사랑을 논했다. 예수님은 사랑을 갖고서 법을 논했다. 거꾸로다. 거꾸로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이 인간의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도 왜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만들었는지

이에 대한 답을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보라는 '하느님의 섭리'인 것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늘 교도소 레지오(기도모임)에 다녀오고 미사를 하고 왔다. 우리 형제들이 껍질째 참외를 먹는 모습에 내 마음이 왜 부끄러울까 묵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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