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 나무와 우물안의 등덩굴
물가의 나무와 우물안의 등덩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5.25 22: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법안 스님<논산 안심정사>
   산사의 뜰에는 장미가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녹음의 싱그러움은 무엇과도 비교가 안될 아름다움 자체이지요. 이런 아름다움 속에도 인생은 고해임에 틀림없습니다.

안수정등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안수(岸樹 강기슭의 나무)란 강가에 겨우 서 있기는 하지만 만일 폭풍우를 만나면 견디지 못하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큰 나무와 같이 위태롭다는 뜻이고 정등(井藤)은 우물 속에 있는 등나무 덩굴이라는 말입니다.

옛날 어떤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무서운 코끼리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코끼리를 피하여 정신 없이 달아나다 보니 우물이 하나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늘어져 있어 다급히 등나무 넝쿨을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우물 밑바닥에는 독사 네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고 또 우물 중턱에는 여기저기서 작은 뱀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 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자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 지경인데 설상가상으로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그 등나무 넝쿨을 쏠아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쥐가 쏠아서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거나,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꼼짝없이 독사들에게 잡아 먹히는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벌집을 건드려서 벌들이 달려들어 머리를 쏘아대고 있는 중에, 달콤한 꿀물이 떨어져 한 방울, 두 방울 입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방울씩 꿀을 받아먹는 동안에는 그 달콤함에 취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까마득히 잊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부처님께서 비유로써 말씀하신 것입니다.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등나무 넝쿨은 생명을,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작은 뱀들은 때때로 찾아 드는 병고를, 독사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한 방울씩 떨어지는 달콤한 꿀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 가운데, 인생이란 유한한 것임으로 그 실체를 잘 알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한한 건강과 청춘, 유한한 재물, 유한한 권력과 명예, 이런 것들에 최상의 가치를 두고 살다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결국 늦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