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살아나는 소리
생명이 살아나는 소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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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백영기 <쌍샘자연교회 목사>

부활주일 아침에 차를 타고 산성의 고갯길을 내려가다가 문득 '부활절'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연한 녹색으로 살아나오는 봄의 기운이 나를 흥분시켰고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이 생명의 움직임이 곧 부활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 되나 쑥덕거렸다. 봄이 발병이 났다는 소문과 봄이 위독하다는 소문, 봄이 죽었다는 소문 등. 그러나 눈이 휘둥그레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 이미 숨어 들어와서 몸단장을 하고 있더라."는 신동엽 시인의 '봄의 소식'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이렇게 봄처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수많은 헛소문이 나돌지만 주님은 그렇게 소리 없이 오셨습니다. 봄이 어떻게 오는지 알 수 없듯이 생명과 부활의 길도 그렇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유명세가 인정받는 세상에서 예수의 부활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십니다. 온갖 거품과 복잡함으로 얼룩진 혼탁한 세상에 주님은 단순하고 진실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작은 목소리의 승리이며, 이름 없는 무명의 승리이며 낮은 자의 승리입니다. 누가 이를 부정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 한국 교회는 좀 조용할 필요가 있고, 이름을 감출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큰 교회 큰 목사가 되어 이름을 날리는 것이나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것도 필요한지 모르나 우리는 다시 성서로 돌아가고 예수께 물어야 합니다. 무엇이 가장 성서적이며 예수의 부활에 맞는 일인지 말입니다.

그건 예수의 부활을 부끄러워하거나 진리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의 부활과 뜻을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일이나, 이름을 내는 일, 또는 세상적인 힘을 기르는 것은 예수의 진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고 필요했다면 예수께서 그렇게 고난을 받거나 죽으시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복음의 전달 방식을 달리 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의 길은 예수의 길과 같고, 부활의 소식이 반가운 이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입니다. 힘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힘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만이 부활의 소식은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힘은 사랑이고 그 사랑의 표현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천지가 개벽하듯 세상을 떠들썩하게 부활하지 않습니다. 소리 없이 고요한 가운데의 부활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 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는 사람들, 이리저리 치이고 찬밥 같은 사람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시기 위해 예수는 다시 사신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진정 가난하고 낮은 자의 노래요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어둡고 차가운 죽음의 역사를 이겨낸 부활과 생명의 역사는 봄날처럼 따뜻하고 향기로우며 부드럽습니다. 가장 조용하고 산뜻하며 가득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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