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인의 등불
가난한 여인의 등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4.0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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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법안스님 <논산 안심정사>

산사에 상사란이 탐스럽게 돋아나더니 이젠 곳곳에 꽃이 다투어 피는 봄입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이라는 이름의 귀신에 홀려 살아가는 형국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이 때문에 자신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지구촌까지도 흩어진 채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질의 가치는 매우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뒷받침이 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의미의 한 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사연을 다시 들춰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위성에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난타는 너무나 가난하여 이집 저집으로 다니면서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어느 날 성안이 떠들썩한 것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성안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부처님이 오늘 밤 오신답니다. 바사닉왕과 백성들이 수만 개의 등불을 밝히고 연등회를 베풀어 부처님을 맞이한답니다."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가난하여 복전(福田)을 공양할 수 없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생각된 난타는 하루 종일 일하여 얻은 두 닢의 돈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갔다. 기름집 주인은 난타의 말을 듣고 착한 마음을 내어 기름을 곱이나 주었다.

난타는 아주 기뻐하며 부처님 오시는 길목에 등불을 밝히고 빌었다.

"세존이시여, 나는 가난해서 보잘것없이 등불이나마 밝히오니, 이 작은 공덕으로 내세에는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과 함께 무명을 밝히게 되옵기를 빕니다."

밤이 깊어갔다. 다른 등은 모두 꺼졌지만 그녀가 바친 등불만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이제 등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한 아난타('형우경'에는 목건련으로 되어 있다.)가 3번이나 끄려 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이 분부하기를 "아 난타여, 부질없는 일이다. 저 등불은 마음 착한 한 여인이 넓고 큰 서원과 보리심을 가지고 공양한 것이므로 사해(四海)의 물을 퍼서 끄려 해도 끝내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등을 밝힌 저 가난한 여인은 반드시 소원 이루리라."

돈 많은 장자(長者)의 만등(萬燈)보다 빈녀의 한 등이 더 빛나서 꺼지지 않는다는 훌륭한 이야기이다.

진리는 이처럼 마음 착한 사람들의 간절한 원력 속에서 마치 산하대지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만물을 포용하듯, 더 낮은 데로 스며들면서 기쁨(곧 법열(法悅))을 다 같이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진리의 씨앗은 오랜 세월 속에서 선남자·선여인이 굳은 신심의 연(緣)에 좇아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또 내일에 이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봄은 가더라도 어찌 녹음방초가 무성한 여름이 없겠습니까. 무상함 속에서도 덧없지만은 아니함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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