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감사를 그리워하며
사랑과 감사를 그리워하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3.0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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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길두 <청주교구 교정사목 신부>

한 시대를 그와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조금이나마 그와 함께 시간을 공유했던 기억을 남겨주셨기에 더더욱 고마움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얼마 전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추기경님이 그런 분이셨어!" 늦게야 그분의 삶을 인정하는 것 같아 서운함도 없지 않지만 혼탁하고 암울한 역사의 그늘속에 소외된 이들을 따뜻하고 밝게 비추어 주신 추기경님을 늦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추기경님의 하늘로 올라가심은 특별함이 아닌 진리가 삶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일상이었다. 하느님 안에서 소박하고 겸허한 자의 낮은 행보였다. 大智如愚라 했다. 우리의 어른은 세상의 명리를 좇지 않으셨다. 이미 알려진 그분의 삶을 적은 지면을 할애해 쓴다는 것이 어리석을 것 같아 적지 않지만 알려지지 않은 추기경님에 대한 작은 추억이 나에게는 있다.

교구사제 연수 피정 때 추기경님께서 지도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할아버지가 까까중학생을 쓰다듬으며 가르쳐 주시듯 편하게 말씀해주신 것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믿음은 바르게 살기 위한 힘이고, 사랑은 바르게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추기경님께서 영원의 길을 들어가시고 나서야 그분께서 하신 믿음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또 한 번은 시골에서 본당 사목을 할 때였다. 조그마한 면 단위 성당이라 재정형편이 좋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어렵게 아이들을 위해 사목을 할 때였다.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들이고 아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산에서 낚시(보물찾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며 원시적으로 놀았다. 어느 여름날 래프팅을 하기 위해 근처 금강으로 갔다. 사전 답사를 갔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아이들을 배에 태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주저주저 하는데 청년교사가 "신부님 너무 비싸서 우리 여력으로는 못할 것 같아요."

"그래 힘들겠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다. 성당으로 다시 가자." 하는데 사장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잠깐만요.", "성당에서 오셨어요" "네.", "그럼 반바지 입으신 분이 신부님", "네,", "아이들에게 자그마한 기쁨을 주려 했는데 저희 성당이 워낙 작은 데라서 못할 것 같네요." 그러자 사장님께서 "그냥 오셔도 됩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다. 갑작스러운 뜻밖의 호의에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이유를 설명하셨다. "사실 저는 천주교 신자는 아닙니다. 추기경님께 고마워하세요. 추기경님 때문에 실비로 해드리는 겁니다." 사장님은 에이즈 환자 후원회에서 봉사를 하실 때 가까이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추기경님이셨다는 말씀과 아울러 너무나 존경하고 고마운 분이셨음을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후원자다 하면서 자기 위신만 꾸미기 쉬운 사람들이 많았지만 추기경님은 진실한 분이셨고 다른 분이셨습니다.", "꾸미기는 쉬워도 진실하기는 어려움을 그분께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추기경님! "욕심이 많으십니다. 주고서 다 받고 가시니 말입니다. 먹고 먹히는 동물적인 생존관계에서 사랑을 주시고 사랑을 받고 떠나시는 참인간이 지녀야 할 사랑의 관계를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가치있고 존엄하다고 여기는 것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와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를 가르쳐주신 분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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