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보기
어둠 속에서 보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1.1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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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길두 신부/청주교구 교정사목

한 소년과 그 아이의 아버지가 깊은 숲 속을 거닐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가려면 그들은 어둡고 긴 동굴을 지나야 했다. 소년이 동굴 입구에서 망설이며 말했다.

"아빠, 저렇게 깜깜한데 어떻게 걸어가요 가는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거예요. 길을 밝혀 줄 촛불도 횃불도 없잖아요."

아버지가 침착하게 아들에게 말했다.

"일단 안에 들어가거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몇 분간 두 눈을 감고 있거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틀림없이 동굴 속 길을 볼 수 있을 거다."

소년은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했다. 얼마간 눈을 감고 나자, 동굴 내부가 보였다. 그곳은 아주 어두웠지만 소년과 아버지는 반대편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만일 어둠을 밝힐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어둠 속에서 보려거든 어둠을 이용하거라."

나라가 온통 먹구름이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들 한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경제난에, 실업에, 정치도 이판사판 싸움판으로 난장질이고, 경제, 환경, 교육 온통 돌아보면 위기촉발 상황이다. 국운이 다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실망스러운 말들이 개탄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말도 더 이상 무의미해지기까지 하다.

어둠의 터널을 어떻게 뚫고 가야하는가 문제다. 어둡다는 말은 많지만 대안이 없다. 대안을 내기보다 어둠의 상황을 직시하고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일이 우선이다. 우리 모두 자성해야 한다. 어둠이 주는 의미들을.

어둠은 막혀 있다. 어둠은 감추어져 있다. 어둠은 정지되어 있다. 어둠은 한정지어 있다.

무엇이 막혀 있고, 감추어져 있고, 정지되어 있는지를 보아야 어둠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때에 열려 있고. 비추고 있고, 움직이고 한정됨이 없는 빛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도 바로 이러한 어둠과 같은 것이다. 고통 속에서, 절망 속에서, 하느님을 신앙하게 되는 일이 더 많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하고, 내가 지은 엄청난 죄의 깊이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어둠을 피하지 않고 어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그대에게 빛은 환한 선물로 다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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