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아느냐고 물으면
하느님을 아느냐고 물으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2.0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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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태 종 담임목사 <삶터교회>

사람들이 나더러 하느님을 아느냐고 물으면 나는 지체없이 '모른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면서 어찌 목사 노릇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에 목사 노릇을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다시 대답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눈이 휘둥그레지곤 하는데,

하느님을 모르니 늘 하느님에 대해서 물을 수 있고, 그래서 그 물음 끝에 나오는 답을 가지고 하느님을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말하는 하느님이 하느님의 전부일 수 없으니 하느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마지막 대답입니다.

오늘도 나는 하느님을 묻는 사람으로 서 있으려고 합니다. 나름대로 하느님을 보기도 했고 느끼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분의 냄새를 맡기도 하고, 만지기도 합니다만 아직도 누가 하느님을 아느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내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나처럼 누군가 하느님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는 사람이 있을 때입니다. 다만 아쉽고 안타깝고 때때로 우습기도 한 것은 하느님을 전혀 모르면서 제멋대로 지어낸 하느님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을 볼 때입니다.

'야페'라는 사람이 쓴 '융의 생애와 사상'에 보면 융의 학생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 가운데서 여러 가지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거기 눈에 띄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가지 말이 언뜻 떠오르는데 '하느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어떤 존재' ,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만나야 하는 분이라는 사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느님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사람에게 자기를 드러내는 분이라는 점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내가 지금 그 하느님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묻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나는 다만 하느님에 대해 묻고 있으며, 그렇게 물으면서 가는 사람이라는 점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자라느니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느니 전지전능하고 사랑이 무궁한 분이라느니 이런 말을 듣고 그것을 읊조리는 동안은 오히려 하느님으로부터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하느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는 점은 기억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하느님은 이 세상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살아있음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떠오르는 햇살에서 하느님의 빛을 우짖는 새들의 소리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하느님의 손짓을 그리고 살아있는 것들이 나누는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그래도 그는 꽤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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