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삶 62년 '후회도 없다'
최선의 삶 62년 '후회도 없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08.12.04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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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초대석 정 상 길 주성대학장
근엄하리라 생각했다. 한 대학의 학장 자리에 있을 정도면 남들보다 화려한 경력과 타인을 다소 불편하게 할 만큼의 카리스마도 발산하리라 상상했다. 한발짝 물러난 위치에서 바라본 정상길 학장에 대한 선입견은 역시 선입견에 불과했다.

정상길 학장(62)은 곱게 자라다 못해 손에 물 한 번 적셔보지 못했을 것이라던 생각과 달리 농장을 운영했던 부친의 가업을 돕고자 경운기를 몰고, 굳은살이 박일 만큼 흙에 파묻혀 살았던 유년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요즘도 주말이면 청원 가덕에 있는 텃밭을 찾는 그는 한 직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린 유명 CEO들과 달리 농촌진흥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영어교사, 치과의사, 건설업대표, 학장 등 5가지의 직업을 넘나들었고, 은퇴 후 6번째 직업인 작가의 길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 굳은살 박여가며 품값 벌어 등록금 마련

정 학장의 부친은, 60∼70년대 청주에서 유명한 '정 치과'(현 청주시 남문로 청주약국 인근) 원장이자 지금의 성모병원과 그 주변 5만여평의 '정 농원'을 운영했다. 도련님 소리를 들으며 농원을 유유자적 거닐었겠다는 단편적 질문에 "방학과 주말이 오는게 정말 두려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 학장은 중·고등학교 시절 농장에서 일한 품을 받아 등록금을 마련했다.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워 주려던 부친의 철학 때문이다. 정 학장이 처음 농사를 지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대학 다닐 때는 방학기간 영어과외로 등록금을 충당했다. 요령을 피울 만도 했을텐데 그는 미련스럽게 일꾼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주인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하니 요령을 피울 수가 없었지요. 굳은살이 박일 만큼 일을 했고, 경운기도 몰고 다녔지요."

정 학장의 부친은 2대 독자인 그를 혹독하게 키웠다. 세상에서 무서울 게 없었던 그도 아버지만은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어릴 적 '사자는 새끼를 강하게 키우고자 절벽에서 떨어뜨린다'는 말을 항상 하셨어요.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은 이유도 아버지 덕분입니다." 그의 부친은 1990년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부친의 작고로 부과된 상속세 30억 원을 갚고자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농원을 처분해야만 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온다고 말한다. 마음의 정리가 안돼서 인지 그는 요즘도 농원이 있던 길을 피해 출·퇴근을 한다. "아버지와 나의 피와 땀이 배인 농원을 세금 때문에 청산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가장 마음이 아파요. 아버지 덕을 입고 자란 적이 없다고 늘 자부하고 살았는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 그늘이 얼마나 컸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 자장면을 좋아해 별명도 '또짜장'

정 학장의 입맛은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다. 한번 길들인 입맛은 오래된 친구처럼 묵은 정이 느껴진다는 그는 자장면 애호가로 소문났다. 오죽하면 별명조차 '또짜장'이다. 그가 자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중학교 시절 심한 배탈이 났어요. 먹은 것 다 토할 만큼 토사 광란이었는데 유독 자장면만 넘길 수 있었지요. 그때부터 자장면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요즘도 옛맛이 그리워 청주 북문로에 위치한 '극동 반점'을 자주 찾는다. 치과의사로 생활할 때 친구들이 '의사한테 비싼 밥 얻어먹자'고 하면 그는 늘 '자장면 먹을까'라는 답변을 했다. 이에 대한 친구들 반응은 '또 자장이냐'였다. 결국 그의 별명은 '또짜장'이 됐다. 그가 자장면도 먹고 그리운 친구들을 만날 목적으로 찾는 장소는 또 있다. 청주서문다리 옆에 있는 '서문제과'다. 학창시절 미팅장소 1순위로 꼽힌 이곳은 맛도 맛이지만 그리운 친구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요즘도 발길을 한다.그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로 '청주베이커리(현 청주약국사거리 근처)'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의 아내를 결혼 문제로 만났다가 보기 좋게 딱지를 맞은 곳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내의 삼촌이 친구였어요. 여동생의 친구인 아내를 내 배필로 점찍어 놓고 둘의 만남을 주선해 줬는데 외삼촌이 빵 사준다는 말만 믿고 약속장소에 나온 아내가 화가 나서 가버렸지요" 딱지를 맞은 정 학장이 딱지 맞고도 아내와 결혼한 사연이 재밌다. 당시 청주농고 교사였던 장인어른을 부친의 병원에서 처음 대면했다. 복장도 말끔한 양복이 아닌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거기다 경운기까지 몰고 갔지만, 오히려 그런 소탈한 모습이 장인어른의 눈에 들어 결혼까지 성공했다. "결혼 후 아내의 말이 걸작이에요. 사실은 남주기 아까운 사람이었다고 털어놓더군요."

◇ 지금은 오직 주성인… 최선을 다하는 삶 외에는 길이 없다.

그는 무려 4가지의 직업을 거쳤다. 청주중·청주고를 거쳐 충북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2년 정도 충북도 농촌진흥원에서 근무한 그는 1969년 공주사범대학 중등교원양성소를 수료하고 중등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뒤, 황간중, 청주농고 등 영어교사로 10여년간 교단을 지켰다. 1980년 조선대 치과대학에 편입해 1984년부터 8년을 정상길 치과 원장으로 살았고, 1999년부터 6년은 (주)화인종합건설 대표이사 회장으로 불렸다. 지난 2005년에는 주성대학 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환경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고 그는 자부한다. 치대를 편입했던 당시 정 학장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와 아내가 있었다. 지금도 낙제하는 꿈을 꿀 만큼 치과대학 4년 생활이 쉽지 않았다는 그는 "14살이나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며 "벼랑끝에 선 심정으로 공부에 매달린 결과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처한 상황을 탓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삶을 선택한 결과다. 틈틈이 취미로 한 운동도 태권도, 유도, 등산, 스키, 윈드서핑, 패러글라이딩, 자전거 타기 등 육·해·공을 넘나든다. 대학시절엔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2번이나 했을 정도다. "안된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철학입니다, 아버지가 그랬듯…." 그는 지역을 아끼는 사랑도 최선을 다했다. 1988년 시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구심점을 만들고자 창단된 청주시민회 초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이젠 주성대 학장으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 전문대가 살길은 오직 특성화라고 말하는 그는 "학생들에게 전문대 진학이유를 물으면 대개 취업이라는 말을 해요. 결국 취업이 안되면 전문대 특성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대학의 비전을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주요 일간지를 훑고 밤10시 취침하기까지 하루 18시간 정 학장에게 주어진 하루는 오직 주성인의 삶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

◈ "가슴 따뜻한 시로 사랑 전하고파"

나의 都市

하필이면

어쩌다 상륙하는 나의 세월이

여기에 있었는데

저마다의 조국처럼

어진 人心이 있었던 까닭도 모르는

외따로 지친

참으로 답답한 街里

헤집으면 늘 여로에서

그리도 분명히 서투른 시민으로

기진한

나의 유역이 살았음에

당신도 다 아는 상자속의 都心은

할말이 많은 가슴을 닫아버린

고마운 분노

나로 돌아서면

밤을 사르는 不度의 대열

평화의 마을엔 치솟는 생채기로

二十四 시간 신음하는 자유의

이름뿐이다.

(1967년)

정 학장은 최근 계간지 '문학예술' 겨울호에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전문 작가로의 길을 걷게 됐다.

당선작은 '나의 도시'와 학장이라는 직함으로 학교에 출근하면서 느낀 감정을 담아낸 '우울한 코스모스', '준비'등 3편이다. 특히 '나의 도시'는 대학 4학년 때 습작한 작품으로 당시 우울하고 암울했던 청주의 모습을 그려냈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진학한 농대 진학이 나를 문학의 세계로 빠지게 했던 것 같아요. 당시 방황의 늪에서 만난 구세주가 문학이었으니까요."

정 학장이 고교 시절 쓴 작품은 우 영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이 문화부장 시절 지면에 여러 번 게재됐다. 대학 시절에는 학보사 활동 외에 지인들과 동인지 '새벽'을 발간했다.

정 학장의 노후계획은 "내 위치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길은 가슴 따뜻한 시를 지어 읽는이로 하여금 온정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며 작품을 통한 봉사를 하고 싶은 소박한 꿈을 내비쳤다.

◈ 약력

-청주고-충북대 졸업

-충북대 대학원 농학석사

-조선대 치과대학 졸업

-충북대 명예경영학박사

-충북도 농촌진흥원(68∼69)

-청주농고,주성중 영어교사(70∼80)

-정상길치과의원 원장(84∼92)

-화인종합건설 대표(99∼05)

-청주무심로타리클럽 회장(87∼88)

-충북도 치과의사회 이사(01∼04)

-시민치과의원 원장(92∼06)

-주성대학 학장(05∼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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