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금 단상
직불금 단상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21 22: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전 철 호 <충북불교대학 교무처장>

황금들판을 바라보면 농부들이 봄부터 땀 흘려 가꾸어온 들녘에 풍요로움이 가득하니 마음가득 여유롭다. 올해는 날씨도 도와주어서 모든 결실이 풍성하다. 붉그레 익어가는 사과, 가지에 주렁주렁 영글어가는 감, 달콤함을 듬뿍 담고 있는 포도. 길옆을 장식해주는 해바라기, 칸나, 들국화까지도 올해는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요즘 직불금 문제로 정가가 시끄럽다. 감사원이 '쌀 소득보전 직접 지불제'의 운용 실태를 감사해 봤더니 2006년에 공무원 본인 1만700명, 공무원 가족 2만9271명이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쌀 직불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쌀 직불금은 시장 개방 폭이 커지면서 쌀값이 떨어지자 농가의 실제 수입이 줄지 않도록 정부의 목표 가격과 산지 쌀값이 차이 날 경우 차액의 일부를 현금으로 보전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 경작자에게 보전해주는 직불금을 소유자인 공무원들이 편법인줄 알면서도 받아서 챙긴 것이다. 직불금을 받아서 실제 경작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가진 사람들이 더 무섭다"면서 세상의 눈이 따갑고, "법을 아는 사람들이 너무 한다"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는 관련된 공직자들이 사퇴한다는 소식과 국정조사를 한다는 사태까지 발전하고 있다.

봄에 좋은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꾸어야만 가을에는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불가에서는 그것을 인과응보라고 가르친다. 인과응보란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복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복과 불행이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이치인 것이다. 만약에 직불금을 수령해간 모든 소유자들이 농사를 지었다면 누가 그들을 향해서 분노의 눈초리를 보내겠는가 청렴하기를 바라는 공직자들에게 받은 실망감이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어리석은 탐욕심이 불러온 당연한 인과응보의 이치인 것이다.

주자십훈에도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고 가르친다.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되어도 거둘 곡식이 없다는 뜻이다. 튼튼하고 좋은 씨앗을 심으면 탐스러운 열매를 얻을 수 있고, 부실한 씨앗을 심으면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가르침이지만 우리네 삶은 쉽게 얻으려고 하고 공짜로 무엇인가 횡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 마음들이 직불금 사태까지 몰고 온 것이 아닐까. 씨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욕심, 정성껏 가꾸지도 않았으면서 풍성한 소득을 바라는 욕망, 남의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들이 가져오는 세태가 가져온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나이가 지천명을 넘기고 나니 인생의 수확기다. 곡식을 기르고 가꾸는 농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도 하나의 농사라고 한다면 그동안 얼마나 좋은 씨앗을 뿌리고, 얼마나 정성들여 가꾸어 왔는지 이 가을에는 되돌아보고 싶다. 법구경에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받는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익을 때에는 악한 사람은 죄를 받는다. 성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착한 사람도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을 때에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한다. 착한 씨앗을 뿌리면 복을 얻고 악한 씨앗을 뿌리면 재앙을 얻는 것이다. 지금 직불금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공직자들은 악의 열매가 익어서 불명예와 수치를 얻는 것이 아닐까

결실의 계절에는 누구나 풍성한 수확을 바란다. 남보다는 더 좋은 것과 남보다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지만 쉽게 얻어지는 횡재나 불로소득은 소중한 가치가 없다. 노력과 땀으로 얻어지는 것은 크고 작음을 떠나서 소중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