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신성한 가치
노동의 신성한 가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14 2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살기 위한 근간은 노동입니다.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살 곳을 마련하고, 입을 것을 만들기 위해 노동은 삶의 필수 행위입니다. 따라서 부의 근간도 노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인류의 사회화가 심화될수록 노동에 대한 인식이 상하를 가르고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의 노동은 하위의 천한 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즉 노동자들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물질을 대가로 팔아야하는 노동력으로만 인식됩니다.

연일 언론들은 세계공황이 도래했다며 떠들어댑니다. 자본과 물질이 넘쳐나는 오늘날 이게 무슨 말입니까 20세기 초의 대공황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주식의 폭락으로 그 서막을 열었습니다. 건강한 노동은 배제되고 오직 자본 증식을 위한 투기와 그것을 자본주의 사회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돈 놓고 돈 먹기의 한탕주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21세기인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한탕주의의 법적장치들을 공고히 해줍니다. 건강하게 노동해서 건강하게 의식주만 해결하는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식으로 한 탕하고, 땅 투기로 한 탕하고, 환 투기로 한 탕하고, 수도권이 포화상태면 지방으로, 지방이 포화상태면 해외로 투기의 거점을 이동시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노동은 매우 값진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회에서도 노동은 신성한 가치였습니다.

"사람은 자기 노동과 현세 생활에 관계되는 온갖 일을 충실히 수행하며 그 노고를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정화하고, 자신의 지성과 노고로 창조 사업을 발전시키고."(축복예식서 605항). 그러나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대신하는 동안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비와 향락이 인간의 중심 가치라도 되는 양 사람들의 가치를 전도시켰습니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새로운 사태'로 이름 붙여져 반포되었던 노동헌장(Rerum Novarum)에는 산업혁명 이후 팽창해 가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집단주의적 사회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극복하고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 조건과 생활환경, 빈곤 문제 등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밝히며 국가가 공동선을 실현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소수 자본가들에 의해 독점된 생산수단은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착취로 이어지고 이러한 부의 편중은 결국 건강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독일 경제학자 슈마허는 산업문명이 만들어내는 오류들과 고도성장만을 지향하는 사회의 문제들이 자동화된 시스템이 아닌 인간이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는 중간기술이라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부유함을 좇아 생명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할 노동마저 스스로 박탈시킨 우리들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은 건강하게 노동하는 사회구조와 인식을 회복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2테살 3,10)고 했습니다. 건강한 노동을 버림으로써 불의한 사회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우리가 일조한 것은 아닐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