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아시아 환란 부메랑 맞은 미국
11년 전 아시아 환란 부메랑 맞은 미국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9.26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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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국장 <천안>

1. 1998년 IMF 사태 직후 회자됐던 우스갯소리 하나. 제목을 달자면 '대통령과 밥솥'쯤 될 터인데 들으면서 씁쓰레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더듬어볼까.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이 밥솥을 어렵게 구했다. 그가 망명길에 오른 후 박정희가 등장, 밥을 지었는데 정작 자신은 먹지 못하고 횡사했다. 그 밥을 최규하가 먹으려고 솥뚜껑을 열었으나 갑자기 전두환이 뛰어들어와 밥솥을 가로채 다 먹어치웠다. 노태우가 바통을 받아 누룽지까지 긁어먹었다. 이후 YS가 나타났는데 아들과 함께 솥바닥까지 박박 긁다가 솥을 잃어버렸다. DJ가 마지막에 등장, 사라진 밥솥을 찾아 헤매고 있다.

건국 후 IMF 환란을 겪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처했던 상황을 절묘하게 풍자한 이 얘기는 작고한 코미디언 김형곤이 자주 써먹어 사람들을 많이 웃겼다.

요즘 새 버전이 등장했다. 김대중 이후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등장시켰는데 참 말들도 잘 만들어낸다.

다시 이어지는 얘기. 환란이 닥치자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서 '딸라빚'을 얻어 새 전기밥솥을 사왔다. 이 솥은 110V짜리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여기에다 386V로'코드'를 잘못 꽂아 밥이 죽이 돼 버렸다. 드디어 올 초, 밥짓기의 달인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다시 새 밥솥을 샀는데 전자밥솥인지도 모르고 장작불에 올려놓고 옛날식(박정희식)으로 불을 때 밥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2. 미국발 쓰나미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최강대국으로 군림해 온 미국이 그 진원지이기에 더 충격적이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되고 급기야 메릴린치에 이어 AIG까지 무너져버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사들이 줄도산 해버린 것이다.

미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무려 7000억달러. 환산하면 800조원, 1년치 우리 국가 예산 256조원의 3배다.

미국인들이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LA타임즈의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55%가 정부의 구제금융안을 반대했다. 찬성은 31%에 불과했다. 반대하는 이들은 "민간 금융사들이 붕괴해 경제에 타격을 입힐지언정 세금(공적자금)으로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설문 응답자의 80%가 지금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3.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미국에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망해가는 회사를 살려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얼마나 귀가 따갑게 들었는지 기억한다"며 미국의 구제금융조치를 비난했다.

1997년 아시아 환란 때 미국이 시장 질서의 원칙을 강조하며 "부실 기업들이 파산되도록 내버려두고 아시아 국가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조금만 도와줬어도 회생이 가능했던 우량기업들이 속절없이 침몰했다. 미국 금융투자사들은 이 회사들을 헐값에 사들여 막대한 부를 챙겼다.

미국이 지난 십수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쓴 전쟁 비용이 8500억달러라고 한다. 지금의 미국의 금융위기를 진화할 돈과 맞먹는 수치다. 그런 돈이 하늘에서 미사일로, 뭍에선 지뢰와 포탄으로 펑펑 쓰여졌다. 부시가 전쟁도 산업이라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꼭 치러야 할 전쟁이었다고 강변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만약의 위기에 대비해 미국이 그 돈을 조금 더 아껴쓰고 모아 놓았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가정 파탄과 노숙의 고통을 겪으며 IMF 환란을 극복한 것을 '소모적 전쟁에 8500억달러나 쓰도록 용인한' 미국인들이 똑같이 감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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