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십니까?
바쁘십니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2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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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바쁘시죠" 언제부터인가 이 말은 사람의 직위와 능력을 대변하는 칭송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현대인은 복잡한 사회문화가 요구하는 거침없는 변화들에 잘 적응해야 하고, 선점을 통해 기득권을 부여잡아야 도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무어의 법칙이 말해주는 것처럼 컴퓨터 업그레이드의 속도 주기는 18개월마다 아니 그보다 빠르게 진행됩니다. 신제품이 나오고 1년 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배로 빨라진 속도의 컴퓨터를 같은 가격에 살 수 있게 됩니다. 소유물에 대한 만족주기가 그만큼 단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와 가전제품은 물론이거니와 자동차, 컴퓨터, 휴대전화, 내비게이션, 전자수첩 등등 고성능으로 고급화되는 제품들을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바쁘다는 한자 표기가 망(忙=心+亡·바쁠 망)이니, 풀어쓴다면 마음 없음의 표현입니다. 문명의 이기에 사람이 밀려나는 것입니다. 이미 문명의 이기들이 사람의 가치를 대신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물질의 팽창은 과학문명의 발달 이후 20세기에 최고점에 다다랐습니다. 그 때문에 물을 비롯한 지구 자원들은 고갈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관심사는 더 많은 자원을 더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그렇고 우리 개개인의 관심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정말 바쁩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부유해지는 것은 사람들이 가지는 최고의 바람인데 그런 부유함을 부정적으로 본 까닭이 무엇일까요

물질에 대한 집착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관심은 진정한 자기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욕구에 둘러싸인 채 진정한 자기를 찾지 못한 삶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자기와 만나지 못하고 내면의 자유가 없는 삶이란 말 그대로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분주함으로 인해 지구온난화는 가속화 되고 2030년에는 북극곰이 멸종할 것이라 합니다. 빙하가 녹아내린 북극의 생태에서 하얀 북극곰들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것이죠.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하면 큰일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바로 무식하면서 바쁘게 움직인 탓에 모든 걸 망쳐놓는 건 아닐까요 변화하는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들이 멸종한 자리에 인간만이 남아서 살 수 있다면. 계속 바빠도 될 것입니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지금도 시동을 켭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나의, 우리의 분주함으로 생명이 밀려납니다. 나와 지구 반대편의 생명까지 위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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