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 효과
베르테르 효과
  • 문종극 기자
  • 승인 2008.09.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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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문 종 극 편집부국장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시인 박목월의 글에 작곡가 김순애가 곡을 붙인 가곡 '사월의 노래'다. 특히 40대 이후의 중년들은 이 노래를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짐을 느낄 수 있다.

젊은시절 누구나 꿈꾸던 당시엔 절절한 사랑의 정형화된 모델로 받아들여진 그런 노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은 간절함이 더욱 아릿하게 만드는 것일게다.

사춘기였던 고교시절 운동장 한켵의 봄볕이 잘드는 잔디밭에서, 대학시절 캠퍼스의 한적한 귀퉁이에 피어있는 목련을 보면서 저절로 흥얼거리던 가곡이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자신이 고귀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곤 하던 기억도 중년들의 마음속에 한조각씩은 지금도 남아있으리라.

'사월의 노래'중 베르테르의 편지는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따온 것이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연인 로테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작품내용 중 베르테르의 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이 소설은 당시 유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사랑의 마법에 걸린 연인들의 가슴을 지어짜낸 소설이기도 하다.

몇 년전 '직지세계화 지역으로부터'라는 기획시리즈의 한 부분으로 구텐베르크 성서의 세계화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때 나는 꽉 짜여진 취재일정 중에서도 짬을 내어 대문호 괴테가 생전에 기거했던 곳을 찾았다.

대여섯평 남짓한 침실(집 전체는 크지만)안에 안락의자 하나와 조그만 싱글침대가 전부인 공간에서 마지막 가는 길에 침대 맞은편의 조그만 창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작품속의 주인공 베르테르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운명하는 괴테가 그 순간 베르테르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는 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침실이,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던 침대가, 그리고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했을 거라고 보여지는 작은 창문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나는 당시 침실 앞에서 괴테는 베르테르, 베르테르가 곧 괴테로 순간적인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때문에 괴테가 숨져간 곳을 바라보면서 내 머리속은 베르테르의 권총자살을 떠올렸던 것이다. 당시에 왜 베르테르의 자살을 내 머릿속에 그렸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생뚱맞기까지 하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이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발간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생겼다고 한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베르테르 효과'는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스스로를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얼마전 유명 연예인의 연탄불 자살사건이 터진 이후 연탄불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몇해 전 재벌회장의 투신 이후 투신자살이 한동안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바로 '베르테르 효과'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1위다. 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며 무엇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하는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정부가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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